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이 시점에서 우리의 혀와 말
    우리사회와 기독교 2000. 10. 19. 23:13
    많은 이들이 말을 하고, 따라서 말의 실수를 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아주 분명한 교훈을 주고 있는 야고보서의 교훈이 우리 모두에게 큰 교훈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원한 진리를 잊은채 이 세상의 많은 이들이 말의 실수를 계속하고 있다. 국제 정치 상황 가운데서의 말의 실수도 있고, 국내 정치와 관련된 사람들의 말에서도, 그리고 우리들 개인들의 사사로운 말에서도 수많은 말의 실수가 계속되고 있다. 이 말의 실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이가 과연 누가 있으랴 생각되지만,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이 상황 가운데서 너무나도 많은 실수를 하고 있기에, 오늘 우리의 상황 가운데서 이 문제를 지적해 보고자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말해야 할까? 먼저 다른 이들에게, 또 이 사회 전체에 궁극적으로 유익이 될 수 있는 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단지 지금 이 상황에 좋은 말들은 결국은 우리를 망가뜨리는 것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말을 들을 때도 지금 당장 나에게 감미로운 말만을 들으려 하지 말고, 당장 기분 나쁘고, 마음이 아파도, 긍극적으로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말을 들으려고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지금 우리에게 아픈 말들은 듣지 않고 귀를 가리고 막거나 전화를 끊어 버리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 익숙해지면 일단 이야기를 계속하기 위해 긍극적으로 필요한 말은 자꾸 가슴 속으로 흘러들어가 버리고 만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다.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궁극적으로 유익이 되는 말이 무엇인지를 찾고 그런 말을 하려고 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상대와 사회의 아픔을 끝까지 인정하는 말을 해야 할 것이다. 때로 상대의 아픔을 인정하는 듯이 말하면서도 우리는 그것이 조금 후면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하므로, 상대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준 아픔은 영원히, 그야말로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상대를 위로하는 말을 하는 듯이 하면서 그 말로 상대를 더 찔러 버리는 일을 하기 일 수 일 것이다. 내가 준 아픔은 영원히 상대의 가슴 속에 있으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말할 때, 우리는 우리의 일생 전체를 걸쳐서 미안한 마음을 지니고 그런 마음에 근거해서 참으로 위로를 줄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의 말은, 비록 상대를 잠시 위로하는 말이라도, 그것은 결국 상대를 무너뜨리고, 상대의 가슴에 비수를 꼳는 말들만을 하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말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가? (1) 상대와 사회 전체의 긍극적 유익을 위한 말을 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의 유익이 되는 말을 하여 상대를 끝까지 무너뜨리려고 하는가? 또 (2) 상대와 사회에 대한 우리의 실수가 영원한 아픔을 준다는 것을 바로 인식하고 그 터 위에서 말할 것인가, 아니면 잠시 동안만 아픔이 될 뿐이라고 스스로 옳지 않게 가정하고 말하여, 결국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만을 할 것인가?

    배경 사상 이해를 돕기 위한 홈페이지 안내

    http://my.netian.com/~wminb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