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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창조된 상태에 대한 바른 이해(2): 처음 창조되었을 때의 상태와 수명카이퍼의 일반은총론과의 대화 2025. 1. 12. 19:02
<월드뷰> 295 (2025년 1월호): 129-32에 실린 글을 여기에도 올려서 더 많은 분들이 보도록 하니 부디 많은 분들이 보시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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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원상태에 대해 생각하면서 카이퍼는 인간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의 수명에 대한 자신의 추론을 한 장을 들여 길게 논의하고 있다(Common Grace, I권 16장). 여기서 처음 창조된 때의 아담의 상태에 대한 생각이 나타나 있다.
아담의 원상태 (처음 창조된 때의 상태)
아담이 창조된 때에 가졌던 처음의 온전함과 힘의 충만함은 타락하여 연약해진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는 사실 적시로부터 시작한다. 이를 우리에게 익숙한 계절에 비유하면서 이렇게 문학적으로 묘사한다. “우리들은 스러짐과 썩음이라는 가을의 옷을 입고 있는 것에 비해서 아담은 그 무엇에 의해서도 손상되지 않은 봄과 같은 강력한 힘 가운데서 꽃 피어나는 것과 같다”(CC, 1:137).
타락 직후의 상황
심지어 타락 후에도 한동안은 인간의 수명이 거의 천년에 이르렀음을 성경이 말해 주고 있다. 물론 이 때 일년의 길이가 얼마인가에 대해서 의견의 차이들이 오랫동안 있어 왔다고 카이퍼는 말한다. 카이퍼가 “고대에는 사람들이 대개 아주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정도로(1:137) 초기 사람들은 부정확하게 말하였기고, 나중에 가서야 정확히 말하는 일이 관례화되었기 때문이다. 의견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사람들이 계절의 변화를 가지고 1년을 말하기에 아마도 처음부터도 사람들이 엇비슷하게 1년을 말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때는 한 해가 한 달이었다고 주장하려는 사람들의 견해를 카이퍼가 반박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데서 초장기 사람들은 타락 후에도 성경이 말하는 대로 거의 천년을 살았다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는 카이퍼의 태도가 잘 나타난다. “우리는 이 보도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1:139). 대개는 생명력(the life force)이 수명을 결정하니 이 초기 족장들은 자연적 활력(natural vitality)이 우리보다 9배 또는 10배는 강하였다고 추론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1:139). 타락 이후의 상황이니 이들의 힘이 부분적으로는 손상되었어도 그러했다고 그러나 “은총”으로 이렇게 유지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고 한다(1:139). 이때 말하는 은총 바로 “일반 은총”이다.
타락 이전의 상황을 다시 생각함
타락 후 상황이 이러하니 타락 이전에는 사람의 활력이 타락 이전에는 더 컸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더구나 하나님의 창조를 상각할 때 “죄가 없었더라면 생명력은 전혀 약화되지 않았을” 것이며, “활력의 모든 저하는 타락의 결과”라고 카이퍼는 바르게 주장한다(CC, 1. 16. 2=1:140).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생명은 본래 살도록, 영원히 살도록 창조하신 것이다. “죽음은 ‘하나님의 창조’의 한 부분이 아니다. 죽음은 죄를 통해서, 즉 죄 때문에 있게 된 것이다. 죄가 인류에게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을 것이다”(1:140). “낙원에서의 삶은 죽음의 그림자도 있지 않던 삶이었다”(1. 16. 3=1:140). 창조 때의 사람은 죽음뿐만이 이니라 병과 나이듬, 고통, 피곤함, 신경 쇠약 등과 전혀 상관없다. 그때는 온전한 힘을 가진 생명, 온전히 조화롭고 계속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1:141).
창조 받은 원상태와 더 높은 상태의 비교
이 부분 논의에서 나타나는 카이퍼의 개혁신학적 특색은 아담의 처음 상태와 그가 타락 하지 않았더라면 이르렀을 상태에 대한 비교에서 잘 나타난다. 아담이 첨음 창조함을 받은 상태와 그가 그로부터 나아갈 상태는 같지 않다는 것이다. 카이퍼는 만일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땅에서의 하나님의 경륜이 다 이루어지고, 첫 사람이 죽지 않고 영광에로 취하여졌을 것이다”(CC, 1. 16. 4=1:141)고 말한다.
이런 카이퍼의 말에는 옳은 것과 의아한 것이 같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이 옳은 것은 타락하지 않았으면 이 땅에서 하나님의 경륜이 다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것과 사람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 말의 의아한 점은 영광 가운데 취하여짐을 따로 말하고 있는 점이다.
카이퍼는 데살로니가전서 4:17에서 바울이 하는 말에 근거해서 추론하여 이를 말하고 있는데 바울이 말하는 바는 타락 후에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예수님의 재림할 때의 상황을 말하는 것이므로 사람이 타락하지 않았을 때에 적용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카이퍼 자신이 아담은 타락 이전에는 그의 인간성이 죄로 인해 낮추어지지 않았으므로 후에 우리의 비하된 몸을 그와 같은 영광의 몸으로 변화시키길 것이라고 말하는 빌립보서 3:21 말씀이 타락 전 아담에게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지적하고 있지 않은가(1:16. 5=1:142)? 또한 카이퍼는 변화 산에서 있었던 변형이 이런 생각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논의한다(1:141). 그러나 여기서 카이퍼가 말하는 것과 같이 표현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서 심각한 논의가 요구된다. 카이퍼는 변화산을 고대 전통을 따라서 다볼 산이라고 단언하고 있다(1:141). 그러나 이 책의 영역자들은 헐몬 산(Mount Hermon)이나 메론 산(Mount Meron)이 아닐까 하는 제안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1:142, n. 3).
그 외에도 이 추론 전체에 대해서 심각하게 재고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카이퍼는 타락하지 않았을 때 이 땅에서 하나님의 경륜이 이루어지는 것과 사람이 영광 가운데 취하여지는 것을 구별하여 말하고 있다. 이는 카이퍼가 후에 되어지는 일에 대해서 생각하고 표현할 때 화란 개혁파 사람으로서는 아주 독특하게 현재의 이 땅이 파괴되어 사라지고 새 땅이 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1:142)과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구별이 좋은지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오히려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이 땅에서 하나님의 경륜이 다 이루어지고 모든 사람들이 다 죽지 않고 영광 중에 있게 되었을 것이다. 즉, 온 세상이 타락이 없이 다 새 하늘과 새 땅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타락하지 않았다면 타락 가능성이 없어지는 것 외에는 처음 창조된 그 온전한 상태로 영원히 사는 것으로 그것이 영광의 상태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사실 카이퍼 자신이 이를 한 곳에서 시사하고 있다. “인류에게 죄가 없었다면, 저주가 땅에 임하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땅의 파괴가 있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1:142) 그러나 영광이 올 필요가 없으니, 타락하지 않았다면 에덴이 영광으로 가득 차고 에덴동산 즉 “낙원 전체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채워졌을 것이다”(1:142-43). 개혁파 선배들은 이를 행위 언약의 대한 보상으로 영생이 약속되어졌다고 표현했다고 카이퍼는 잘 지적한다(1. 16. 6=1:143).
카이퍼 자신도 에덴 동산과 장차 올 영광의 왕국의 차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에덴의 정황은 가변적이고, 죄가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아담이 행위언약을 잘 통과해서 이르게 되는 더 높은 상태인 하나님 나라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잘 지적한다(1:143). 에덴은 (사람이 죄를 범하면) “소멸이 있을 수 있고 결국 사라졌으나, 영광의 왕국에서는 그 어떤 소멸에 대한 생각도 있을 수 없다”(1:143). “영광스럽게 된 자연은 비하될 수도 없고, 생명력이 전혀 손상될 수 없다”(1:143). 이를테면, 우리가 흔히 방수(water-proof)에 대해서 말하는 용어를 사용하여 말한다면, “영광의 왕국은 죄에 대해서 절연적이고(sin-proof), 죽음이 침범할 수 없고(death-proof), 저주가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는(curse-proof) 상태”다(1:16 7=1:144). 즉 영광의 왕국은 “죄와 죽음과 저자가 사람과 세상에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상태”다(1:144). 이를 성경은 극치에 이른 “영생”이라고 하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6문에 대한 답에서는 “지극한 복”[至福] 또는 “영원한 행복”이라고 한다(1:44).
아담은 이 상태에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그 상태로 가야만”(had to go over to that condition) 했다고 카이퍼는 잘 지적한다(1:144). 에덴에서는 그런 전환이 생명나무로 성례전적으로(sacramentally) 표현되어졌다고 한다(1. 116. 8=1:144).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으나. 결국 카이퍼도 이 나무 자체는 “그냥 나무인데(a common tree) 그에 부가된 약속이 넘치는 은혜의 원천”이었다고 시사하고 있다(1:145).
죄와 타락한 상태, 고난과 사망의 상태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행위언약을 잘 통과하여 이 더 높은 상태로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행위언약에서 실패하여 더 낮은 상태로 떨어졌다. 창조받은 원상태에서 떨어졌기에 이를 한자말로 타락한 상태라고 한다. 그 결과 사망이 우리에게 오게 되었다.
성경은 분명히 가르치기를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다”고 한다(롬 5:12). 그러므로 타락 이후에는 우리가 결국 죽도록 태어난 것이라고, 즉 결국 죽을 자들로 태어난(born mortal) 것이라고 할 수 있다(1:141). 타락 이후에는 죽음이 우리가 마지막 숨을 내쉴 때에 비로소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에 작용한다(death is at work in us throughout our life)(1:141). 우리는 이것을 병들 때만이 아니라 어린아이라도 때때로 피곤함을 느끼는 일 등 삶의 전체 과정에서와 특히 노화 과정에서 잘 확인하게 된다. 타락 이후에 고난과 죽음의 구조가 자리 잡아서 모든 불행이 있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1) 아담이 처음 창조 받아 존재하게 된 원상태(original state), (2) 죄로 인한 고난과 죽음의 구조가 지배하는 타락한 상태(the fallen state), (3)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믿는 우리에게 주어진 원칙적으로 구속된 상태, 그리고 (4)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종국에 오게 될 영광의 상태를 잘 생각해 보는 것이 유익하다. 이것을 인간의 사중 상태로 오랫 동안 표현하여 왔다. 이 종국적 영광의 상태가 아담이 행위언약을 잘 통과 했더라면 이르게 될 더 높은 상태였다는 개혁신학의 강조점을 잘 살펴보면 성경과 그 가르침을 이해하는 일에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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