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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아 홍수가 가져온 변화
    카이퍼의 일반은총론과의 대화 2024. 12. 10. 18:31

    카이퍼의 일반은총론과의 대화(9)

     

                                                                             노아 홍수가 가져온 변화

     

    키이퍼는 노아 홍수 이후에 지구의 상황(an order of affairs)과 우리의 존재 상황(our existence)이 상당히 달라졌으며, 노아 홍수로 인해서 변한 상태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까지 산다는 것을 강조한다(CC, 1. 12. 1=1:102, 103). 카이퍼가 이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노아 홍수가 가져온 변화의 사실에 충실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특히 19세기에 이 점을 사람들이 충분히 눈여겨 보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안타까와서이다. 홍수에서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표현되었으나 노아 홍수로 시행된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도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 주고 있다는 것이다(CC, 1:102). 그런데 노아 홍수에서 드러난 은혜는 특별은총이 아니라 일반은총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1:103). 이를 표현하면서 카이퍼는 방주는 영생으로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의 현세적 삶을 보존하는것이라고 재미있게 표현하기도 한다(1:103). 그래서 방주로 말미암아 당시의 하나님의 교회만이 아니고 결과적으로 보면 유기된 함(Ham)과 동물들도 같이 구조된 것임을 밝혀 진술한다. 홍수 후의 상황은 재림 때까지 우리들이 사는 카이퍼가 새로운 세대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상황이기에 우리에게 중요하다고 한다. 이 항목에서의 논의는 노아 홍수로 일어난 변화, 그 변화된 상태(an altered order of affairs) 가운데서 우리가 지금까지 살고 있으니 그 상태를 상세히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지만, 카이퍼의 논의 가운데서 추론이 많고, 너무 길게 너무 그 의미를 확장해서 논의하는 카이퍼적인 특성이 잘 나타나는, 그래서 상당히 안타깝기도 한 부분이다. 이런 문제점을 의식하면서 일단 노아 홍수 이후의 상황에 대한 카이퍼의 논의를 따라가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첫째로, 카이퍼는 이 홍수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8명이지만 이것은 결국 하나님이 처음에 창조하셨던 인류가 죄악 때문에 그 대다수가 잘려져 나가는 큰 심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남은 것으로, 인류(the race itself)의 보존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CC, 1. 12. 3=1:105). 이것은 사실이고 의미 있는 말이지만, 매우 카이퍼적인 진술이다.

     

    둘째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홍수 이전의 땅과 같은 땅인데 홍수의 격변으로 말미암아 그 성질이 상당히 바뀐 땅이라는 것을 카이퍼는 강조한다(CC, 1. 12. 4=1:105). 그는 창세기 7:11이 말하는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라는 말과 지구 표면에서 관찰할 수 있는 대단한 지각 변동의 결과들을 연결시키면서, 이사야 54:10이 말하는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길지라도라는 말에서 홍수 때에 일어난 사건들을 생각한다(1:106-106). 또한 창세기 8:4아라랏산이 언급되고 있는데, 오늘날은 그보다 더 높은 산들이 더 많은 것을 볼 때 지표면에 대단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고도 말한다(1:106). 오늘 날도 이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상당히 카이퍼적인 추론이 나타나 진술이다.

     

    셋째로, 지구의 환경(the atmosphere)이 바뀌었음을 성경 본문이 사사함을 카이퍼는 지적한다(CC, 1. 12. 5=1:106). 창세기 7:11하늘의 창이 열렸다는 것과 홍수 후의 무지개의 출현은 이때 기후의 어떤 변화가 일어났음을 가정하게 한다는 것이다(1:106). 이때 우주의 변화가 어떻게 되었는지 말할 수 없지만, 앞으로 재림 때에 있게 될 격변을 말하면서 천체의 변화를 언급하는 것을 볼 때, 이때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1:106). 그래서 카이퍼는 노아 홍수는 그저 구름이 몰려들거나 비가 퍼 부어진 것 이상의 (1) 전적으로 비정상적인 기후의 변화(a wholly extraordinary phenomenon in the atmosphere)라는 것과 (2) 이때 내려온 물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뉘어졌다고, 아마도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되었다고 매우 흥미로운 주장을 한다(1:106). 그래서 홍수 이후에는 이런 홍수 같은 물이 다시 넘치는 것을 막는 조건이 되었다고 한다.

     

    넷째로, 이 새로운 상황에서 선언된 하나님의 복은 하나님의 교회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와 동물계에도 미치는 것임을 카이퍼는 강조한다(CC, 1. 12. 6=1:107). 이를 표현하면서 카이퍼는 매우 중요한 발언을 한다. “교회가 구원받는 것은 교회 밖의 모든 것을 일반적 파괴에로 던져 버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1:107). 여기 일반적 파괴로 번역된 것을 일반적 저주로 이해하면 후에 스킬더가 말하려는 것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카이퍼가 이미 한 것이 된다. 교회를 구원하신 것은 모든 민족과 백성들 가운데서 신자들을 다 모으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위해서는 비록 타락했고 노아 시대와 같이 아주 심각한 죄에 빠져 들어갔어도 이 세상이 유지되어야 해서 노아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유지하겠다는 선언을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노아언약은 일치적으로 이 상황에서 새로운 언약(노아언약)에 근거해서 교회를 구원하려는 것이었고, 그 교화가 신자들을 모으도록 하기 위해 이 세상을 유지하는 은총도 내려 주신 것임을 카이퍼는 시사하고 있다.

     

    그렇게 일반은총에 의해 유지된 세상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비록 구원되지 않아도 자신도 모르지만 하나님의 일반은총에 의해 보존되는 것이고,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크신 이름을 높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 일의 대표적인 예로 카이퍼는 솔로몬 성전에 레바논의 목재를 댄 히람을 든다. 그는 이스라엘의 특정적 은혜(특별은총)에 참여하지는 않는 사람이지만 그에게 부여된 은총(일반은총)이 여호와의 이름의 영광을 위한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사용된 것이다(1:107). 일반은총은 구원하는 은총은 아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특별은총의 일을 돕는 일을 하게 된다. 일반은총에 의해 이 세상 보존되면 그 안에서 구속사가 진전되어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크신 이름이 높여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성격을 잘 의식하면 오해하지 않고 의미 있게 이 개념을 잘 사용할 수 있다.

     

    다섯째로 사람과 동물들의 관계에 대한 원칙이 선언되었다. 창조 때에는 그 창조 목적에 비추어 보거나(1:26), 아담이 잘 수행하는 것에서 나타나듯이(2:19-20) 사람이 동물을 통치하는 것이 유기적(organic)이고 자연적인(working automatically) 것이었다. 그러나 타락 이후에는 투쟁(a struggle against the animals)이 나타났고, 이제 홍수 후에는 동물들에게 사람을 두려워함이 있게 되었다(9:2). 또한 동물들이 사람의 손에 붙여졌다. 사람이 동물들을 잡아먹을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 피를 그냥 흘리는 것, 즉 사람이 야수 같이 행하지는 않도록 한계가 주어졌다.

    이에 덧붙여 사나운 짐승들에게서 사람을 보호하도록 하나님의 의가 작용하게 되었다(1:107).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과 동물들 사이에 하나님의 은총이 있게 하신 것이다. , 일반은총이 작용하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모든 파괴적 동물들의 파괴와 멸종의 위험이 있게 하신 것이라고 카이퍼는 해석한다(1:107-108).

     

    여섯째로, 인간의 삶 자체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게 하셨다(CC, 1. 12. 8=1:108). 인간의 힘이 점점 약해져서, 노아는 950세까지 살았으니 거의 10세기를 살았고, 셈은 거의 6세기를 살았는데(11:10-11) 에벨은 460년을 살았고(11:16-17), 스룩은 230년을 살았으며(11:22-23), 아브라함 때에는 거의 우리와 수명이 비슷할 정도가 되었다. 홍수 이전에는 인간의 수명이 점차 줄어 간다는 경향을 찾아볼 수 없다(1:108).

     

    일곱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강력한 폭력을 발생을 억제할 수 있도록 인간 생명을 위한 규칙을 제정하셨다(CC, 1. 12. 9=1:109). 노아 홍수 이후에는 부모의 권위와 가부장적 영향력만으로는 인간들이 증폭시키는 악을 억제하기 어렵게 되었기에 적법한 사람들이 통치하는 제도가 제정되어 질서 있는 인간 사회가 가능하도록 되었다는 것이다(1:109). 이 부분은 제일 의미 있는 부분이다. 이것을 지난번에 언급한 정부 제도의 제정과 연관시켜 간단히 언급하고 지나갔어도 좋을 것인데, 카이퍼는 노아 홍수 이후에 변화된 상황 전체를 생각하면서 이 점을 길게 제시한다. 정부에게 생사를 주관하는 권리를 부여하여 정부에게 엄위를 주셔서 정부가 다른 사람 위에 있는 한 사람의 독재가 아니라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가 되게 하셨다고 한다(1:109). 이런 말들을 그저 현상 유지(status quo)를 위한 말로 오해하면 안 된다. 이것은 정부가 제대로 기능할 때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는 잘 드러낸 말이다. 그러나 비록 잘못된 정부라도 세상에 질서를 유지하게 함으로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는 것으로 제시된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제는 살인을 이렇게 정부가 행사하는 사형(capital punishment) 제도로만 억제할 수 있을 정도로 살인이 이전과 달리 더 만연하여져서, 이제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인류가 서로를 죽이지 않고 온 땅을 가득 채우게 할 수 있게 하려는 뜻이 선언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창세기 6:1에서 번성과 충만을 말씀하신 후에도 창세기 6:7에서 다시 번성과 충만을 말씀하셨다는 것이다(1:109). 이런 복의 선언과 사형 제도의 제정이 덧붙여져서, 이미 가인에게서 시작된 서로 마구 죽이는 일이 억제되어 온 땅에 인류가 번성하는 것이 가능하게 하셨다고 한다(1:109).

     

    홍수가 가져온 변화 때문에 사태를 새롭게 규정하신 그 규정이 지속되도록 (1) 창세기 8:22의 약속에서 사물의 새로운 질서의 영속성(the stability of the new order of affairs)을 시사하셨고, (2) 성령이 노아의 입으로 하게 하신 예언, 즉 셈에 대한 온전한 축복과 야벳에게 주신 부분적 축복과 함에게 한 저주에서 세계사가 전개될 노선들을 스케치해 주게 하는 데서 나타나고 있다고 카이퍼는 주장한다(1: 109). 그런데 이를 말하고 그에 시사된 부분에는 역시 카이퍼 같은 상상력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부분이 카이퍼의 논의에서 제일 안타까운 부분이다.

     

    그런데 카이퍼는 홍수 후에 도입된 사태의 변화된 질서 가운데 전포괄적이고 역사 전체를 통치하며, 우리의 상황에 대해 결정적이고, 미래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일반은총의 행위(an act of general grace or of common grace)가 계시되어 있다고 한다(1:110). 그러면서 우리의 신앙고백은 반드시 일반은총에 대해서 설명해야 하고, 우리의 인생관과 세계관은 일반은총에 근거해서 형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1:110). 이를 마무리하면서 카이퍼는 하나님의 은총의 능력의 큰 행위를 무시하거나 약하게 여기는 것은, 따라서 일반은총도 무시하거나 약화시키는 것은 자신의 인생관을 왜곡하는 것이고, 따라서 잘못된 이원론에 빠지는 것이며 기독교가 개혁파의 노선에서, 즉 바른 노선에서 벗어나게 할 위험을 더 많이 있게 하는 것이다”(1:110)는 중요한 말을 덧붙이고 있다.

     

    이 말을 잘 해석하지 않으면 이 중요한 말을 왜곡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에 근거하는 것이며, 그에 근거할 때에 개혁파라는 정도에 세계관을 수립할 수 있는데, 그 은혜를 인정하는 것에 일반은총을 인정하는 것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보아야 이 마지막의 중요한 문장을 바로 이해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이를 오직 일반은총의 중요성만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전체 상황을 왜곡하고, 카이퍼의 의도도 왜곡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해석하는 일에서나 카이퍼 저작을 읽는 데 있어서도 성경과 개혁신학에 충실하고자 하는 카이퍼의 전체적 의도의 빛에서 바로 보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다시 강조한다. 일반은총은 특별은총을 위해 있는 것이고, 특별은총은 일반은총의 존재 근거’(rai·son d'être). 다시 말하여, 특별은총이 있기에 일반은총이 있을 수 있는 것이고, 그런 일반은총의 작용 때문에 이 세상에 특별은총이 적용되는 구속사가 전개될 수 있다. 이것을 잊으면 일반은총에 대한 논의는 무의미하다. 일반은총은 항상 특별은총의 무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런데 특별은총이 없으면 일반은총이 있을 수 없다.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는 특별은총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 자체로는 인간들을 구원하지 못하는 일반은총도 구원을 위한 특별은총을 위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엘렉산더 핸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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