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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이퍼의 일반 은총론과의 대화 6>: 노아 언약의 규례들과 인간 생명의 보호
    카이퍼의 일반은총론과의 대화 2024. 5. 1. 22:34

    <월드뷰> 287 (2024년 5월호): 128-31에 실린 글을 여기에도 올려서 더 많은 분들이; 일고 생각하도록 합니다. 찬찬히 읽어 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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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인들은 노아 언약과 관련해서 7 가지 계명이 노아 계명(the Noahic commandments)으로 있다고 한다(Common Grace, 1. 6. 1.=1:46). 그것은 (1) 우상 숭배 금지, (2) 음행 금지, (3) 신성 모독 금지, (4) 살인 금지, (5) 도둑질 금지, (6) 피 먹는 것 금지, 그리고 (7) 무정부주의 금지, 즉 정부를 수립할 의무라고 그들이 설명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를 개종자들이 지키기로 서약하고 들어올 관문이라고 하면서 관문의 개종자들”(the proselytes of the gate)이라는 표현도 사용한다. 그들은 심지어 이 모든 것을 잘 지켜야만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도 말한다. 이것은 유대교가 얼마나 공로구원론적인지를 잘 보여 주는 한 예이다. 사람들이 항구적으로 지켜야 하는 금령들이라고 유대인들은 이것을 제시하는 것이지만, 사실 창세기 본문의 시사에 의하면 (4), (6), (7)만이 언급될 수 있고, 나머지는 이 시점에 주어져 있는지가 의심스럽다. 특히 노아 시대에 다른 신들을 섬겼다는 증거가 있지 않으므로 과연 (1)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2)(5)는 이전에 하나님의 의도를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노아언약에 명시적으로 나타나 있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유대인들도 이 금령들이 노아 때에 처음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Common Grace, 1. 6. 1.=1:47). 이 중에 6 가지는 이미 에덴에 있을 때 아담에게 주어졌던 것이라고 하고, 노아 때에는 오직 피를 먹지 말라는 금령만 더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이를 노아 계명이라고 하지 말았어야 했다. 물론 유대인들은 그 이전의 6개의 계명이 있었는데 노아 때에 7번째 계명이 더해져 이제 온전하게 되었다(1:47)고 하면서, 그들의 7에 대한 의미부여에 부합하는 설명을 한다. “피를 먹지 말라는 이 금령이 더해져서 7 금령이 되어 온전한 계명들이 되었다고 하고, 따라서 노아 계명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다. 카이퍼는 이에 대한 평가를 하지는 않지만 이를 유대적 창안”(this Jewish invention)이라고 말하기(1:47) 때문에 이런 생각을 비판적으로 보는 듯하다. 이에 대한 카이퍼의 좀 더 비판적 논의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카이퍼는 홍수 후에 창세기 9:4-6에 나타난 (1) 동믈들을 피채 먹지 말하는 금령과 (2) 사람을 죽이는 것을 금한 것을 노아적 규례들(the Noahic ordinances)이라고 하면서, 이에 집중하고 있다. 이 둘은 모두 창세기 9:5에 사람들이 동물들을 먹을 수 있도록 허용한 것과 연관된 금령이라는 것을 잘 관찰하면서 이에 집중하는(1:47) 카이퍼의 접근은, 그 위에서 소개한 유대적 금령들에 대한 이해보다는 본문 자체에 근거한 좋은 접근이다.

     

             피채 먹지 말라는 금령

     

    먼저 피채 먹지 말라는 금령은 참으로 이때 처음으로 언급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칼빈이 이는 사람들이 피는 먹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게 하기 위해 여기서 명료하게표현되었으나 이 금령 자체는 옛 율법의 한 부분이었다고 부정확하게 관찰하여 오도하고 있다고 카이퍼는 잘 지적하고 있다(C.G., 1. 6. 2=1:47). 유대인들도 이것이 처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전에 있던 것을 좀 더 구체화한 것이라고 하면서 이 계명의 도덕적 범위를 좀 제한시키고 있다”(C.G., 1. 6. 2=1:48). 칼빈도 이것의 의식적 측면을 주목하면서 그런 의식적 측면은 이제 우리와 관계없다는 의식적 해석을 하고 있는데, 실상 노아 언약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폐해진 것이 아니고, 노아 언약의 표는 지금도 있으니 이 규례는 항구적 타당성을 지닌다고 카이퍼는 논의한다(C.G, 1. 6. 2=1:49).

     

    홍수 후에는 비록 사람들이 동물들을 죽여서 먹을 수 있어서 동물의 수를 통제하는 것이 인간의 손에 달린 것처럼 보일지라고 동물의 생명조차도 생명을 창조하시고 거두시는 하나님의 손에만 달려 있음을 분명히 하기 위해 이 금령을 주신 것이다(C.G., 1. 6. 3=1:50).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고, 모든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이에 순종해야 한다. 이 규례는 이 세상의 현질서가 마쳐질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다(C.G., 1. 6. 4=1:52). 이렇게 아무런 한계 의식 없이 동물을 죽이는 것은 동물과 인간의 경계를 흐리게 하여 인간을 동물 중의 하나로 만드는 것이고, 그것은 오늘날 다윈주의가 철학적으로 선포하는 것과 같은 이론이 된다”(C.G., 1. 6. 4=1:53)는 카이퍼의 지적은 매우 적절한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흐리는 모든 것을 시도하지 말고 그 사이에 강한 댐(dam)을 잘 구축해야 한다고 카이퍼는 잘 지적한다. 사실 그것을 위해 동물을 피채 먹지 말하는 금령이 주어졌다는 것이다(CG, 1:53). 현장에서 동물를 잡아먹는 (그것이 피채 먹는것이다!) 야수들과 달리, 사람이 동물을 먹는 것은 그 동물이 이미 죽은 후에 먹으라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권리를 사용해서 창조주와 생명을 주신 분을 존중하면서, 동물을 잡은 후에 그것이 죽기를 기다린 후에”(CG, 1:53) 조리해서 먹으라는 것이다(강조점은 덧붙인 것임).

     

    피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말로부터 후에 이스라엘의 화목제에 대한 초기 지시자(an early pointer)를 찾아보려는 칼 카일(Karl Keil, 1807-88)과 프란츠 델리치(Franz Delitzsch, 1813-90)의 주장은 받아들일만 하지 않다는 카이퍼의 논의(CG, 1:54)는 매우 옳다. 오히려 카이퍼가 더 매력적인 것으로 판단하는 칼빈의 견해, 이 규례는 인간 사회의 인간적 성격을 보존하려는 것이라는 견해가 옳다고 여겨진다.

     

           살인의 금하는 금령

     

    그런데 잡아먹기 위해 동물을 죽이다 보면 인간도 자연스럽게 죽일 수 있다. 그래서 또 하나의 댐을하나님이 세우셨으니, 그것은 사람을 고의로 죽이지 못하도록 하신 것이다(CG, 1:53). 동물들이나 사람이 사람의 피를 흘린 것, 즉 죽인 것에 대해서 책임을 물으시겠다고 하셨다.” 동물들에게 어떻게 책임을 물으실지에 대해서는 아주 구체적으로는 말씀하지 않으셨다(CG, 1:53). 따라서 이에 대해서는 추론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서 카이퍼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순종하는 동물들은 그 수가 더 늘어 가게 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동물들은 점차 줄여 가는 식으로 하셨다고 추론한다(CG, 1. 7.3=1:59). 후대의 역사가 하나님의 섭리적 조치로 이렇게 된 것을 드러낸다고 카이퍼는 말한다. 사람에게 용기와 지혜를 주셔서 무기를 만들고 야수들에 대항할 수 있게 하셨고, 더구나 동물들에게 사람을 두려워 하도록 하셔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라고 한다(CG, 1:59).야수들은 물러가고 멸종할 것이 그 미래다”(CG, 1:59). 이것은 흥미로운 추론이지만, 이것도 그저 추론으로 여겨야만 한다. 이런 추론에 대해서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면 안 된다. 이런 추론을 제시하는 이유는 결국 사람을 해친 야수들이 사라지게 되지만, 그것은 그 각가의 야수가 죽게 된다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하나도 다치지 않게 보호된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살인에 대한 하나님의 조치에 대해서는 창세기 9:6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고의적 살인을 금하심은 인간 존재 전체를 보호하려고 하신 것이다(CG, 1. 7, 1=1:55). 특히 홍수 후에는 모든 미래가 이 한 가족 혹은 네 식구에게 달려 있던 상황이니 이런 명령은 매우 시의적절한 것이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홍수로 멸하고 자신들만 남아있는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이 규례는 사람의 생명에 대한 방패처럼 다가왔을 것이다(CG, 1:56). 이 구례는 사람들은 격려하고 온전히 위로하는 효과를 냈을것이다(CG, 1:56). 사람들을 위협할 동물들과 사람들의 고의적 살인과 홍수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보호될 것이라고 하셨다. 홍수에 대해서는 노아 언약에서 다시는 홍수로 전멸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고, 동물들로부터 보호는 이 규례로, 그리고 고의적 살인으로부터는 그의 명령으로 사람을 보호하신다고 하셨다(CG, 1:56). 그런데 사람을 해친 동물들에 대해서는 그 종()에게서(from the animal species) 피를 찾으실 것이라고 하셨는데, 사람에 대해서는 해친 각 사람의 손에서(from the hand of another human being) 해친 자의 생명을 찾으신다고 하셨다(CG, 17. 4=I;60)고 하면서 카이퍼는 지나치게 구별하려 한다. 직역하면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이것이 꼭 그렇게 구별할 것을 염두에 두면서 하신 말씀인지 의심스럽다. 그래서 이것도 카이퍼의 카이퍼다운 추론으로 여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야수들의 경우에는 피만이 언급되어 외적인 것을 중심으로 하는데, 사람을 죽인 경우에는 생명이 언급되면서 살인 문제를 더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CF, 1:60)는 것은 옳다. 그런 점에서 야수들은 생명이나 영혼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피만을 갈구할 뿐이다 ... 그러나 살인의 뿌리는 먹이를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미워함과 악의다”(CG, 1:60)는 요한일서 3:15을 염두에 둔 카이퍼의 말은 의미있다. 더구나 인류는 근원적으로 혈연 관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살인은 가인의 아벨 살해와 같이 결국 형제 살해’(fratricide)(CG, 1:60-61).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그 희생자의 생명을 죽인 자에게서 찾으실 것이다.

     

    때로는 살인한 사람에게 죽을 것 같은 공포가 일어나 그 후로는 평안함과 평안과 기쁨이 사라지게도하여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하게 하기도 하시고(CG, 1. 7. 5=1:62), 또 때로는 그런 양심의 가책을 평생 가지고 밤낮으로 괴로워하며 살다가 죽을 때에야 고백하게 하시기도 하시고, 평생을 살아 있는 송장(a living corpse)처럼 살게도 하시고, 또는 다음에 살필 것과 같이 조사의 과정을 거쳐서 죄가 드러나게 하시고 그에 대해 공정한 심판의 일부가 가해지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피를 흘릴 죄값을 찾으신다.

     

            나가면서

     

    사람을 죽인 죄는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을, 그럼으로써 하나님을 해하였다는 것(CG, 1:64)과 자기만을 추구하면서 그의 형제된 사람을 해하여 형제간의 사랑의 유대(the fraternal bond of love)를 깨었다는 점, 그래서 인간 사회에 대한 하나님의 근본적 규례를 손상시켰다”(CG, 1:63)는 점에서 큰 죄이다. 짧게 표현해서, 살인자는 그가 타고난 인간의 본성(his inborn human instinct)을 손상시킨 것이다”(CG, 1:63).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하라고 한대로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규례와 질서를 저버리는 것이고 그의 규례를 버리는 것이며, 사람의 삶 전체를 죄와 타락한 욕망의 폭풍에 넘겨주는 것이다”(CG, 1:63-64). 그러므로 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라고 하셨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이에 대해서 다음에 검토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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