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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퍼의 일반 은총론과의 대화(5): 노아 언약에 부가된 복들과 규례들카이퍼의 일반은총론과의 대화 2024. 5. 1. 22:27
<월드뷰> 285 (2024년 3월호)에 실린 글을 여기에도 올려서 더 많은 분들이; 일고 생각하도록 합니다. 찬찬히 읽어 보셔요.
하나님 언약의 일방성에 대한 바른 이해와 강조
다른 언약들이 그러하듯이 노아 언약도 하나님께서 수립하신(God establishes) 언약이라는 것을 카이퍼는 강조한다(Common Grace, 1. 5. 2=1:39). 즉, 사람들이 언약에 동의하여 계약이 맺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경이 말하는 언약은 하나님께서 친히 수립하신 언약이다. “이 언약은 사람들과 하나님이 함께 행동하여 있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혼자의 행동으로 있게 된 것이다”(1:39). 이에 대해서 언약 신학을 말할 때 흔히 사용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언약은 “일방적”이다(unilateral). 그래서 조금 후에 카이퍼 자신도 노아 홍수 후의 내린 규정은 “전적으로 일방적이다”고 표현하기도 한다(1:40).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창 9:9-11, 17)라고 하셨다는 것을 강조한다(Common Grace, 1. 5. 2=1:39).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협의의 결과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의 규례(an ordinance of God)와 비교될 수 있다고도 말한다(1:39). “사람들의 동의, 승인을 요청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결정하셨고 사람들이 전력을 다해 그에 대항해 저항해도 하나님의 언약은 그대로 있는 것이다”(1:39). 이는 천체의 움직임과도 비교할 수 있다. 천체가 하나님의 규례에 따라 움직이고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언약은 항상 작용한다고 말한다. 카이퍼는 예레미아 33:20-21의 말씀에 근거해서 이것을 말한다.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을 깨뜨려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 내 종 다윗에게 세운 나의 언약도 깨뜨려 그에게 그의 자리에 앉아 다스릴 아들이 없게 할 수 있겠으며 내가 나를 섬기는 레위인 제사장에게 세운 언약도 파할 수 있으리라.”
더구나 노아 언약에서는 그 어떤 조건성도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아 하나님의 이 일방성이 잘 드러난다. 노아 언약에서는 “약속이 절대적이고, 그 어떤 조건과 연관되는 것이 아니다”(1:40). 그 “하나님의 언약은 그대로 있었고 지금도 유효하다.”(Common Grace, 1. 5. 2=1:40)
창세기 9:1-7의 이해
창세기 9:1-17은 범죄한 사람들을 몰살한 홍수에서 구원된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후손들에게 천지의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기록한 것이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복을 선언하시는 것으로 시작하고 마치면서 모든 것을 이 복 주심의 틀 안에 넣고 있다”(Common Grace, 1. 5. 3=1:4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창 9:1).
범죄하여 다 죽고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8명만 살아남은 그 상황에서 한 가족 혹은 4 가족이 들은 이 말씀에는 (1) 동물들로부터 사람들을 지켜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그들에 대한 사람들의 주권을 분명히 하시면서, (2) 동물들을 먹을 수 있고 먹어야 한다는 허용의 명령을 주시고, 그러나 (3) 야수들같이 동물들을 피채 먹지는 말 것을 명하시고, (4) 쓸데없이 동물을 죽이는 것, 특히 그렇게 죽이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한 조치로서 사형 제도를 지시하시는 것이 다 들어 있다. 카이퍼는 이 네 가지가 다 은혜의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한다(1:42). 이 모든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이니 일반 은총의 표현들이라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 세상이 지속되도록 하나님께서 조치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일반 은총은 노아 때에 드러나 극악한 인간의 죄 속에 있는 이 세상을 지속시키시는 하나님의 방도였다. 그런데 그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결국 이 세상에 특별은총이 주어져서 온전히 구원되도록 하기 위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동물들이 사람들 두려워하게 한 것은 “동물계와 인간들의 레슬링에서 하나님께서 인간 편을 드신 것으로”(1:44) 생각하기 보다는, 사람들에게 동물을 먹도록 하신 그 맥락에서 이해 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홍수 이후의 변하게 된 환경 가운데서 인간에게 동물 단백질이 필요하게 되어 육식을 허용하신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동물들에게 인간을 두려워하게 하는 것을 주시지 않으셨으면 인간 사회가 동물들에 의해 막대한 손상을 입게 되어 역사적 진전을 하는 일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노아 언약에 있는 규례에 대한 카이퍼의 생각과 그에 대한 비판
노아 언약에 사람들이 동물들을 먹을 수 있게 하신 규례가 새롭게 나타났다. 낙원에서는 식물(植物)들만 먹을 수 있었으나 이제 동물(動物)들도 먹도록 하신 것이다. “노아 언약 안에 있는 이 규례는 새로운 것이다(Common Grace, 1. 5. 5=1:44).
그런데 카이퍼는 사람들이 동물의 고기를 먹는 것이 홍수 이후에 시작된 것 같지는 않다고 하면서 이에 대해서 여러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렇게 생각하고 논의하는 것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주신 것은 동물들의 죽음을 전제로 하고, 정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에 대한 언급이 있고, 특히 방주에 정한 동물은 7마리, 부정한 동물은 한 쌍씩 들이게 하신 언급이 있으니 이미 정한 동물을 먹은 것이 전제된 것이라고 시사(示唆)하면서 논의하고 있다(1:45). 더구나 동물을 피채 먹지 말라고 하신 것에는 그런 야만적 습관이 이미 자행되고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1:45, 51). 그래서 홍수 이전에도 동물의 고기를 먹은 것이 일반적인 것이었다고 하면서, 그것이 “일반적이었어도, 식물을 먹는 것이 본래의 창조 규례로 의도된 것이었다는 것이 보충되거나 확대된 것은 결코 아니다”고 말한다(1:45). 이렇게 부정할 것에 대해서 왜 홍수 이전에 동물 고기를 먹은 것이 일반화되었었다고 굳이 생각하고 상상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카이퍼 이전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보다는 홍수 이후에 육식을 허용하신 것을 강조하는 성경의 말씀을 따라서 그 이전에는 식물만이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주어졌다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닐까?
카이퍼 자신도 이전에 식물이 음식으로 주어진 것과 같이 홍수 후에 동물의 고기도 인간의 일상적 먹을거리라고 선언되고 있다고 한다(1:45). 그러므로 그 이전에 동물을 먹는 것은 비록 일반적으로 행해졌어도 불법이라는 시사를 주기는 하는데, 카이퍼의 논의 방식으로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이를 말하지는 않는다. 홍수 이후에 “동물의 고기를 먹는 것을 정죄하려는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더 지혜로우려고 하는 것이며, 사물이 마땅히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결정할 하나님의 신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된다”(1:45)는 것은 아주 분명히 한다. 그렇다면 홍수 이전과 이후 모든 정황을 그저 하나님의 규례를 중심으로 사태를 생각하면서 논의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즉, 낙원에서부터 홍수 때까지는 오직 식물을 먹은 것이 하나님의 규례였고 (따라서 사람들이 그래 왔으며), 홍수 후에 비로소 동물의 고기도 인간의 일상적 먹을거리라고 하나님이 규정하셨다고 그냥 규정만을 중심으로 말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노아 언약 안에 있는 또 하나의 규례
노아 언약 안에 있는 또 하나의 규례로 카이퍼는 동물의 고기를 “피채 먹지 말라”는 명령(창 9:4)을 든다. 카이퍼는 이 규례에 대한 유대적 이해를 비판하고(1:46-48), 또한 칼빈 등의 가혹한 죽임과 야수적인 먹음(cruelty and brutality)을 금하는 것이라는 이해도 비판하면서(1:48) 자신의 해석을 제시한다. 모세 율법에 있는 “그림자적 사역”(the ministry of shadow), 즉 모형적 의미가 에덴 낙원과 노아 언약에는 있지 않다고 하면서(1:48, 카이퍼 자신의 강조점), 특히 노아 언약의 약속은 그리스도에 의해 폐지되지 않았다고 한다(1:49). 카이퍼가 이스라엘 언약이라고 부른 율법의 표들(signs)인 할례와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폐기되고 사라졌으나, “노아 언약의 표인 무지개는 아직도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고 말한다(1:49). 그래서 칼빈의 의식법적인 견해(this ceremonial view of Calvin)를 떠나서 노아 언약의 이 규정의 “항구적 타당성”(the perpetual validity)을 주장할 수 있다고 한다(1:49).
카이퍼는 하나님의 허락으로 우리가 동물의 고기를 먹을 권리를 가질 때도 “동물의 생명을 포함해서 생명에 대한 권리는 오직 하나님께서만 있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하시려는 뜻이 “피채 먹지 말라”는 금령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Common Grace, 1. 6. 3=1:50). 동물을 잡아 그 고기를 먹을 때에도 “그 동물의 생명의 창조자”로서 하나님의 명예를 드러낼 것을 요구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피채 먹지 말라”는 말은 의미상 “생명과 함께 그 고기를 먹지 말라”는 의미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1:50). 사람이 “그 동물의 생명을 취할 수는 있어도 생명을 줄 수는 없다”는(1:50)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 요점을 잘 말한 것이다. “생명이 피에 있다”는 말이 “그 피 자체가 생명”이라고 생각하라는 말이 아님을 잘 드러내는 것이다(1:50). “그 피는 후에 응결되고 분해될 것이다”(1:50). 그러므로 그 피 자체에 생명이 있다는 말이 아니다. 피 자체는 생명이 아니다. “성경은 몸에 피가 잔존하고 있을 때에도 마지막 숨쉴 때까지는 영혼이 그 안에 있으니, 생명이 그 안에 있다고 가르친다”(1:51). 그러므로 동물의 생명이 다 떠난 후에야 동물의 고기를 먹으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을 생명을 주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the only Giver of all life)으로 존중하는 사람들은 다 그리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Common Grace, 1. 6. 4=1:52).
카이퍼는 노아 언약과 함께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을 존중하면서 그 의미를 잘 드러내었다. 자신의 독특한 해석을 부가하여 오도하는 면도 있으나 그런 것을 제외한다고 성경의 진술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우리가 마땅히 생각하고 해야 할 일을 잘 드러내 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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