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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찬과 그 의미
    신학이야기 2023. 3. 29. 15:45

    교회의 성례에 대하여(4): 성찬과 그 의미

     

    세례를 주께서 친히 제정하셨기에 우리들이 주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세례를 행해야 하듯이, 성찬도 주께서 친히 제정하셨기에 우리들은 주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성찬의 성례를 집행해야 한다. 예수님의 성찬 제정사를 잘 전달한 바울이 이를 전하면서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라고 하신 말에 함의된 뜻의 하나는 그가 오실 때까지 성찬을 시행함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가 이 세상 속에서 행하는 이 일은(현재) 주께서 구속된 자들을 위해 죽으시고 피흘리신 일(과거)와 연관되면서 또한 그가 오실 때(미래)와 연관된 일이다. 십자가의 구속이 없이는 현재의 성찬이 있을 수 없고, 그가 다시 오시는 일이 없으면 우리들의 궁극적 지향점이 사라진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피를 흘려주신 사실과 관련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미래에 그가 다시 오셔서 그의 구속으로 이루신 일을 극치에 이르게 하심을 바라보면서 지금 여기서 교회 공동체의 성찬을 시행해야 한다.

     

    주께서는 왜 성찬을 제정하셨는가?

     

    성찬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셨음을 다시 상기하면서 우리의 논의를 해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그들이 전하는 말을 받아 믿어 다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들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 안에로 세례를 주라”(28:19)고 하셨던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26:26)고 하시고, 또한 잔을 가지고 감사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면서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26:27) 하셨다. 또한 사도 바울이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고 하셨으니, 이 일은 최후의 만찬에서 하는 것으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오실 때까지 제자들이 계속하도록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행하셨다. 그러므로 이를 과연 성찬 제정(the ordination and institution of the sacrament of the Holy Supper)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생각하면서 신약 교회는 이 성찬을 1세기부터 지금까지 해 왔고, 그리고 우리들이 바로 그 교회에 속해 있다면 우리도 이 일을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지속해야 한다. (따라서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실질적으로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은 이 성찬에 부합하지 않다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런 사람들이 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도 다시 그리스도의 재림을 명확히 하고, 재림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서 성찬을 제대로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왜 성찬을 제정하셨는가? “이미 중생하여 그의 가족, 즉 그의 교회에 속한 사람들에게 자양분을 주시며(nourish) 그들을 유지하시기(sustain) 위해제정하셨다(1561년에 고백된 벨직 신앙고백서의 표현). 이렇게 말할 때 종교개혁 기에 우리 선배들은 사람에게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인, 그들이 처음 날 때에 그들에게 주어진 물리적이고 현세적 생명이 있으며, 중생한 사람들인 신자들에게는 그에 더하여 영적이고 천상적인 생명”(spiritual and heavenly life)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이 영적이고 천상적인 생명은 중생할 때 주어진것이며, “복음의 말씀을 통해 온것이고, 따라서 선택된 자들에게만 있는”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 가운데 있는 생명이다. , 이 땅에 있는 하나님 백성들에게는 두 가지 생명이 있다. 하나는 물리적이고 현세적 생명이고, 또 하나는 영적이고 천상적인 생명이다. 물리적 생명은 이 땅에서 나는 물질적인 양식으로 유지되지만, 영적인 생명으로는 그런 것으로 살 수 있지 않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물질적인 양식과 함께 영적인 양식이 필요하다. 바로 그런 뜻에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시험 받으실 때에 구약 성경을 인용하시면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4:4)고 말씀하기도 하셨다. 또 다른 곳에서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6:32, 33)고 말씀하시고, 결국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6:41)고 하셨다. 이 영적인 생명은 기본적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a living bread that came down from heaven)이신 그리스도 자신에 의해서 유지될 수 있다.

     

    자신의 구속 사역을 적용하심으로 우리에게 이 영적인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께서는 때로는 (1) 자신의 말씀으로 자신의 의도를 잘 알려 주시고 성령님으로 그에 따라 살게 하실 뿐만 아니라, (2) 신자들이 먹을 때 자양분을 얻고 생명이 유지 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성찬을 통해 영적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신다. 이와 같이 (1) 말씀을 통해, 그리고 그 말씀을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행하도록 하시고, 또한 (2) 성찬을 통해서, 중생한 신자들 안에서 영적이고 천상적 생명이 유지되게 하시는 것이다.

     

    성찬이 작동하는 방식

     

    이 때 성찬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가? 개혁자들 가운데서 칼빈이 가르친 것과 가장 유사하게 이를 표현한 분들의 이해에 의하면, 성찬이 작동하는 방식은 영적인 임재에 의한 성례전적 연합이 있게 하신 것이다. 이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다음 세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1) 눈에 보이는 지상의 떡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표상하게 하고, 포도주로 그리스도의 피를 표상하게 하였다. 이는 떡과 포도주가 우리의 물리적 생명을 유지하는 기본적인 것이 되어 우리에게 자양분을 주고 상쾌하게 하는 것과 같이, 이것이 우리의 영혼과 영적 생명에 자양분을 주고 상쾌하게 함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물리적인 떡과 포도주를 사용하신 의미가 여기에 있다. 이것은 다음에 언급하려고 하는 성찬의 핵심적인 내용을 밖으로 표현해내는 것이다. 표현하는것도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이를 거룩한 표(the holy signs)라고 하기도 한다.

     

    (2) 우리의 영적 생명이 유지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우리에게 적용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 떡과 포도주가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바(the signified)는 그리스도께서 제공하시는 영적이고 천상적인 양식”(spiritual and heavenly bread)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을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적용하여 우리 안에 영적이고 천상적인 생명이 있게 하셨듯이, 이 영적 생명의 유지도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을 사용하여 이루신다. 그 자신이 영적인 양식이고, 또한 그가 제공해 주시는 것이 영적인 양식이다. “그는 오직 신자들에게만 주어진다”(He is communicated only to believers). 그리스도께서 항상 자신을 제공해 주시지 않으시면 우리의 영적 생명은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다. 순간순간 그리스도와의 생명적 관계에 의해서 우리가 살아간다. 그래서 성찬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는 눈에 보이는 떡과 포도주를 입으로 먹고 마시지만,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영으로 먹고 마신다고 표현한다.

     

    (여기서 천주교회의 화체설과 루터파의 공재설과 우리들의 입장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다. 천주교회와 루터파는 결과적으로 우리의 입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다고 표현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입으로 떡과 포도주를 먹과 마실 때에 성령님께서 성례적적으로 작용하여 우리의 영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다고 표현한다.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실재로(in reality) 현존하나 영적으로 현존하여(spiritual presence) “영으로 그 몸과 피를 먹고 마신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먹은 것은 그리스도 자신의 몸이요, 우리가 마시는 것은 그리스도 자신의 피이지만, 그것이 먹고 마셔지는 방식은 영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3) 그렇게 표현되는 것과 의도한 바가 성찬에서 결합되어 실질적으로 작용하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다. 외적으로 표상하는 바와 그것이 의도하는 바인 그리스도와의 생명적 관계를 매순간 연결시키는 분이 성령님이시고, 그 성령님의 작용으로 우리들에게 성찬에서의 성례전적 연합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이런 신비한 성례전적인 연합을 우리가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성령님께서 이 일을 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편에서는 믿음으로 우리에게 적용시키고 영적으로 받을 때에(when appropriated and received spiritually by faith) 성찬의 떡과 포도주를 과연 의미 있게 먹고 마시게 된다. 성령님께서 이 일을 성찬이 되게 하시는 것을 우리 편의 용어로 표현하면 오직 믿음으로 받을 때에만 성찬이 되는 것이다. 성례전의 주체이신 하나님 편에서는 성령님께서 이를 사용하셔야 우리가 떡을 나누고 포도주에 참여하는 것이 효과를 발휘한다. 이것이 성령님 안에서 성찬을 시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성령님 안에서 성찬을 하는 것을 우리 편에서는 믿음으로 참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성찬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은 항상 성령님에 의해서 믿음으로”(by the Spirit through faith) 참여한다고 표현한다. 우리의 손으로 떡을 받아 입으로 먹고, 우리의 손을 잔을 잡고 입으로 포도주를 마실 때, 성령님 안에서 믿음으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몸과 그의 피(the true body and true blood of Christ)를 믿음으로 영적인 생명을 위해 받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믿음으로 받는다. 그래서 믿음을 우리 영혼의 손과 입”(the hand and mouth of our souls)이라고 하기도 한다(벨직 신앙고백서 35).

     

    그러므로 믿음으로 참여하지 않는 사악한 자들은 성찬의 외적인 것을 받을 뿐이고, 결국 그것이 자신들의 정죄가 되게 받을 뿐이다. 예를 들어, 가룟 유다와 사마리아의 마술사 시몬이 성찬에 참여했어도 그들은 외적인 표만 받았을 뿐이고, 그 표가 의미하는 바인 그리스도를 받은 것이 아니다. 그 성찬의 의미하는 바인 그리스도는 오직 신자들에게만 전달되는 것이다(He is communicated only to believers).

     

    다시 말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이 거룩한 표들로 표현하게 하신 것을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시니, 이런 성례가 헛되게 하지 않으시라는 것이 분명하다. 물론 이것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방식을 우리가 온전히 다 이해하지 못한다(goes beyond our understanding and is incomprehensible to us)”는 것도 분명하다. “성령님께서 하신 일이 은밀하고 우리가 다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는 항상 성부의 우편에 계시면서도 그 때문에 자신의 몸과 피를 영적으로 우리에게 전달하셔서우리가 믿음으로 받게 하시는 일을 하시기를 전혀 피하지 아니하시고,” 우리가 성찬을 나눌 때마다 영적으로 자신의 몸과 피를 주시는 일을 계속하신다. , 그리 계속해서 영적으로 중생한 신자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신다. 그리스도와의 생명적 관계가 그것의 실체이다. 그는 날마다 그의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베푸시며, 우리가 성령님 안에서 성찬을 제대로 할 때마다 또한 우리이게 자신을 나누어 주신다.

     

    나가면서

     

    그러므로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도 1561년에 우리의 믿음의 산배들이 고백한 바와 같이 다음 같이 고백하면서 성찬에로 나아가야 한다: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자신과 그의 모든 유익들을 우리들에게 전달하시는 영적인 식탁(a spiritual table)이다. 그의 수난과 죽음의 공로를 우리에게 주실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그의 몸을 먹음을 통해서 우리의 가련하고 불쌍한 영혼들에게 자양분을 주셔서 힘 있게 하시고 위로하시며, [믿음으로] 그의 피를 마심을 통해서 그들을 편안케 하시고 새롭게 하신다.”(벨직신앙고백서 35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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