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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의 성례에 대하여(1): 성례 일반에 대한 정리
    신학이야기 2022. 11. 2. 22:24

    <월드뷰> 2022년 11월호에 실린 글을 여기도 올려서 더 많은 분들이 읽고 생각하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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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은 우리들의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미숙함과 조야함과 연약함을 생각하셔서 우리들을 위하야 성례들을 제정하셨다고 믿습니다.”고 시작하는 벨직신앙고백서 33항의 고백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공통적인 고백이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세 가지이다. 성례전은 (1) 우리들의 선하신 하나님께서 (2) 우리들을 위해서 (3) 제정하신 것이다. 이 하나하나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들의 선하신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다.

     

    성례전은 우리들이 필요해서 우리들이 만든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오직 우리의 선하신 하나님께서 제정해 주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기본적으로 역사의 과정 가운데서 사람들이 이렇게 하면 신앙이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해서 만들 것들을 모두 배제할 뿐만 아니라, 특히 그 어떤 것을 사람들이 성례라고 하는 것을 배제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명확하게 신약 교회의 성례로 제시하신 것만을 교회의 성례라고 하고 그것을 철저히 시행하려고 해야 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세례 받은 자들에 대해서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일정한 교육을 거쳐서 그들의 머리에 주교가 손을 대고 기도하여 성령님이 임하도록 하면서 그런 방식으로 신앙을 견고하게 한다는 뜻으로 견신례(Confirmation)가 시행되었었다. 물론 세례 후에 다시 교육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그들을 신앙 안에서 견고하게 하는 일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 때 주교가 손을 얹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성령님께서 임하는 것도 아니므로 종교개혁이후에 우리들은 이것들을 폐하였다. 유아 세례 받은 이들이 유아 세례 교인으로 있다가 일정한 교육을 거쳐서 자신의 입으로 참된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고 교회의 성인 교인으로 가입하게 되는 것은 입교(入敎)라고 하여 세례의 부속시켰지만, 나머지 것은 폐지한 것이다.

     

    또한 오랫동안 중세 교회의 확고한 규례로 자리 잡았지만 성도들이 잘 하지 않으려고 기피하고, 또 이를 하는 경우에 그와 관련하여 많은 오해가 만들어진 고해성사가 폐지되었다. 천주교회에서는 고해 성사를 통해서 예수와 화해하게하여 그의 삶을 다시 나눈다고 하지만, 도대체 성경에서 이를 하라고 했다는 근거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죄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늘 하나님 앞에 죄 고백을 하면서 날마다 성화에 힘써 나가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또 필요한 경우에는 교회 공동체 앞에서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일절 깨끗함을 향해 나가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너희가 죄를 서로 고백하라”(5:16) 말씀에 꼭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제(司祭)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고백하고 행위에 그에 대해서 사제가 제시한 여러 일들을 다 이루면 하나님께 합당한 만족(satisfaction)을 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도대체 우리가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 공(merit)이 되는 것이 아니고, 이런 식으로 죄 고백을 하라는 규정이 성경에 없으므로 종교개혁을 한 교회는 고해 제도를 폐하였다. 이는 사람들이 만들 제도라고 여긴 것이다. 종교개혁은 성경에 있지 않는데 사람들이 만든 모든 것을 폐하려고 하였다. 오직 성경이 교회가 계속해서 하라고 규정한 것들만 철저히 준수해 기도록 하였다.

     

    모든 사람이 혼인하도록 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만 성경에서 이것을 특히 성례라고 규정한 것이 없으므로 종교개혁된 교회는 천주교회에서 혼배 성사라고 하던 것을 성례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예배로 하거나 하나님 앞에서 시민적 의식으로 행하도록 하였다. 천주교회의 혼배 성사는 큰 미사의 하나로 여겨진다. 그러나 종교개혁을 하면서 우리들은 이를 폐지하였다. 오늘날 일부 개신교회에서 혼인 예배를 하면서 일부 성공회의 의식을 따라서 집례자와 신랑과 신부가 성찬을 하는 것을 심각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것으로 매우 조심하면서 피해야 할 것이다. 우리 선배들이 일부러 이 모든 것을 폐한 것을 잘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죽어 갈 때 천주교회에서 하는 종부 성사(last unction)는 그들이 이 일의 근거 구절로 제시하는 야고보서 5:14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는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천주교회의 종부성사는 성경의 본래적 의도와는 다른 식으로 적용한 것으로 판단해서 폐지하였다.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할 때에 당대 약으로 사용되던 기름을 바르는 것에 대한 언급을 종교 의식적으로 생각하되 회복을 위한 것을 마지막 기름부음(last unction)으로 잘 못 적용한 대표적인 예가 된다.

     

    천주교회에서는 이 모든 것을 수행할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신부님이 세워지는 신품성사를 중요한 성례의 하나로 여겼다. 그러나 사역자는 그리스도의 대리자(vicar)가 아니며, 그가 세워지는 것을 중요한 일이나 성경에서 이를 성례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의 후예인 우리는 목사임직식을 성례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수행하라고 직접 명령하신 세례와 성찬만을 정당한 기독교적 성례로 인정하며, 이를 성경에 제시한 규례에 따라 수행하는 것이 성례의 신실한 수행이라고 한다(이에 대해서는 다음 두 번에 차례 차례 생각해 볼 것이다).

     

                   우리들을 위해서 제정하신 것이다.

     

    매우 종교적 의식인 성례전은 하나님을 위해 제정된 것이 아니다. 이에 참여하면서 이것은 귀찮은 일이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쓸데없지만 과거로부터 해오던 종교적 규례니 참여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매우 말이 안 되는(non-sense), 우수운(comical) 것이다. 그러나 과거 교회 역사 속에서도 그러하였거나와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코미칼한 상황이 무지기수로 발생한다. 그러므로 다들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서 왜 이를 제정하셨는지를 생각해 그 의미를 깊이 새겨야 한다.

     

    성례전은 우리의 조악함과 연약함 때문에 복음 선포에 더해서 이를 규정하셔서 (1) 우리 안에 약속을 인쳐 주시고(to seal his promises in us), (2) 우리에 대해 선하심과 은혜를 더 해 주시기로 약속하시고(to pledge good will and grace toward us), (3) 또한 우리에게 영적 양식을 주시고 우리의 신앙을 유지할 수 있도록(to nourish and sustain our faith) 제정하신 것이다. , 이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아나 하나님의 은혜 언약의 참여자가 되었다는 복음의 말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하시고, 또한 지금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일을 잘 이해하게 하도록 인치심으로, 처음 믿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우리 안에 분명히 해(confirming in us)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1) 성례를 통해 확신을 더 얻게 되고, (2) 우리 신앙의 성장을 위한 실질적인 자양분을 공급받게 된다. 그러므로 정상적 상황에서 교회는 성례전을 제대로 시행해야 한다. 그리고 제대로 성례전을 시행하면 참여자들은 자신들이 은혜 언약 안에 있음을,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음을 더 확신하게 되고, 더 성숙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공급받게 된다. 물로 이 때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시행되는 서 성례전에는 그것을 말로 설명하는 말씀이 항상 동반되어야 한다. 천국복음의 말씀은 그 자체만으로 선포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눈에 보이게 하고 촉각으로 느끼게 하는 성례는 말씀과 함께 시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성령님께서 함께 하셔야만 제대로된 말씀 선포와 성례전의 시행이 된다.

     

    이와 같이 성례는 그 수단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내적이고 불가시적인 것의 가시적인 표와 인(visible signs and seals)이다.” 그것을 수단으로 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내적이고 불가시적인 것(something internal and invisible)은 우리에게 영적 자양분을 공급하셔서 성장하고 성숙하게 하는 모든 것과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서 우리가 누리게 되는 모든 은혜를 뜻한다. 그것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밖으로 표하여 내고 도장을 찍어 주어 확신하게 하는 것이 성례다.

     

    그러므로 성례에는, 종교 개혁 이후로 우리들이 늘 강조해 온 바와 같이, 내적으로 그것이 뜻하는 바(signified)가 있고, 그것을 외적으로 표하는 것(signs and seals)이 있고, 그 두 가지를 연결시키는 것이 있고 그 모든 것이 중요한다. (1) 성례가 내적으로 뜻하는 바는 우리를 위해 죽으신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바로 우리를 위해 일어난 것임을 표하면서 우리가 그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아남”, 다른 말로 하나님과 우리의 은혜 언약에 우리가 같이 동참하였음, 더 크게는 하나님 나라에 참여 하게 되었음이라는 큰 사실이 있다. (2) 그것을 외적으로 표하고 확증하는 도장을 찍어 주시는 것이 세례의 물과 성찬의 떡과 포주이다. 그리고 (3) 그 내적 의미와 외적인 표를 연결시키는 성례전적인 연합(sacramental union)이 있어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령이 실재적 임재(real presence)와 작용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례전이 내적으로 표하는 바 그 외적인 표들, 그리고 성례전적인 연합이 다 필요한 것이고 이것이 다 우리들을 위한 것이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 제정하신 것이다(Ordained).

     

    그렇기에 세례와 성찬의 표들은 우리들을 속이는 공허한 표가 아니라, 매우 의미 있는 것이다. 성례전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가 없이는 성례전을 아무 의미도 없게 된다. 따라서 성례전이 의미하는 바인 진리이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없는 성례전의 집행은 무의미하고 공허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연합해 있고 항상 그와 교제를 나누고 있으니 성례전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를 행하라고 명령하신 그리스도의 명령을 무시하는 것이며 주님에게 불순종하는 것이고, 매우 교만한 것이다. 이를 제정하신 분이 선하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자신이다. 그리고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교회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행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경되도록 하여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하시는 성경의 사역을 열심히 옆에서 돕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천상에 게신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성령님을 통해서 하시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하는 일을 옆에서 도울 수 있음이 우리에게 복이요 지극히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우리가 하는 천국 복음에 대한 선포를 믿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들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셨으니(28:19), 교회는 그리스도의 참 제자들에게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 주께서 이를 제절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례를 받은 이들이 계속 해서 성장하고 성숙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며, 그 복음을 외적으로 표현해 내는 성찬도 힘써서 행해야 한다.

     

                                                             John Knox가 목회하던  St. Giles Cathedral (Edinbur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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