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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호순 사건과 그리스도인(2): 사형제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사회와 기독교 2009. 2. 20. 23:25

     

           진정한 생명 존중의 길과 사형제 문제에 대한 생각


    강호순 사건과 관련해서 우리들은 이 문제의 본질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인간 생면 경시의 문제라는 것을 생각했었다. 그만이 아니라 우리 안에 진정으로 인간 생명 존중의 태도가 있는 지를 깊이 있게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에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 사형제 문제를 어떻게 연관하여 생각해야 할지를 논의해 보겠다.

     

         (1) 현황: 지난 1997년 12월 30일에 흉악범 23명이 사형 집행 된 뒤 지금까지 만 11년 동안 사형 집행이 되지 않아 국제 사면 위원회(International Amnesty)가 우리나라를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하고 있고, 따라서 현재 사형이 선고 되었으나 형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형수 58명을 두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과연 사형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강호순 사건과 관련하여 많은 분들이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들은 원칙을 중심으로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2) 대립하는 두 의견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사형제를 폐지하는 것이 인간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주장하기도 하고, 또 어떤 분들은 사형제를 존치하는 것이 인간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대립하는 두 의견이 인간의 존중하기 위하여 각기 의견을 내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 두 의견 중의 어느 하나는 인간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공정한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사형 폐지론을 주장하시는 분들은 사형에 해당하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인간이니 그의 인권과 생명을 끝까지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또한 오판시의 구제 불능성과 정치적 오용의 문제점을 언급하면서 사형폐지론을 주장하며, 그렇게 사형제도가 없는 상황이 사회 속에 흉악 범죄를 더 줄이는 것이 되므로 사형 폐지 주장이 인간 생명 보호에 더 기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또한 사형제 존치를 주장하는 분들은 사람의 생명이 고귀하므로 고의로 사람의 생명을 앗은 것과 그에 해당하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사형을 선언하여 인간 존중의 태도를 드러내야 하며, 또한 그렇게 사형제도가 존치되어 있을 때 사회에 흉악 범죄가 줄어들 수 있으므로 사형 존치론이 인간 생명 존중에 더 기여 하는 것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주장은 입장은 다르지만 이 둘이 다 인간 생명 존중을 위하여 각각의 주장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때때로 이 논의를 하다가 우리 마음속에 반대 주장을 하시는 분들에 대한 반감과 미움의 마음이 나타나기도 하는 데, 그것은 사실 가장 본질적 죄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논의도 궁극적으로 인간 생명 존중의 태도를 가지고 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3) 사형제 존치와 폐지 중 어떤 것이 사회 속의 흉악 범죄를 줄이는데 더 도움이 되는가 하는 것을 중심으로 논의하는 것은 이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길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실증적 연구(empirical research)를 하여 왔지만 지금까지는 우리들의 지혜가 부족하여 그 어느 쪽이 더 확실하다는 결론이 났다고 하기 어렵다. 각각의 입장을 가진 분들이 각기 자신에게 유용한 연구 결과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연구 수준으로는 실증적 연구를 통해서 어느 쪽이 사회 속의 흉악 범죄를 줄이는 데 더 기여 하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이는 이 문제 해결 방법을 현상적으로, 그리고 실용적으로 찾아보려는 태도라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심각한 문제는 현상적이고 실증적 방식으로 해결해서는 안 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현상적이고 실용적 생각이 우리 주변에 늘어 가고 있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이다.

     

        (4) 어느 시점의 국민감정을 가지고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말하는 것도 부적절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와 같이 온 국민이 흉악 범죄에 대해 관심이 높을 때는 사형 존치에 대한 입장에 더 많은 의견이 나타나게 된다. 저 자신이 성경과 기독교의 전통적 입장에 비추어 사형 존치론을 주장하므로 현재의 상황은 나와 같은 주장을 하는 분들에게 유리한 것이지만, 사실 어느 시점의 국민감정을 가지고 문제를 결정하려고 하는 것도 옳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어느 시점에 국민감정이 사형 폐지를 원하게 되면 그것이 옳다고 해야 한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국민이 동성애자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것이 동성애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하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다수결과 감정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5)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문제 대해서도 우리는 성경의 전체적인 뜻에 따라 말할 수밖에 없다. 다른 모든 것을 생각한 후에라도 오직 성경만아 하나님의 뜻을 종국적으로 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sola Scriptura). 성경은 구약 에서도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으므로 인간의 생명은 손상한 사람은 그의 피를 흘리도록(즉, 그의 생명을 빼앗도록) 하는 말씀을 선언하고 있다(창 9:6; 출 21:12, 14, 23; 22:3; 신 19:11-13, 21; 21:22). 신약 시대에도 이 원칙의 변함이 없다(롬1:32).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공의의 원칙은 고의로 인간 생명을 해한 죄와 그에 해당하는 죄에 대해서는 사형이 선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원수 갚으려는 마음이나 원한에 가득 차서 이런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 개인적으로는 가족적으로는 우리에게 해를 끼친 자들을 다 용서하라고 주께서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가 당한 모든 악에 대해서도 기꺼이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공적인 기관에서는 공의의 원리에 따라 선언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와 같은 공적 기관에서는 사형 제도가 존치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일반적 원칙에 따르는 것이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지 않으므로 이에 대해 늘 다른 생각을 하겠지만 적어도 성경을 존중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회 속에서 사형 제도를 주신 하나님의 의도를 선언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들이 손상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악행한 자들까지 용서하며 끌어안고 회개케 하기 위해 힘을 따하되, 필요한 경우 대통령의 사면을 청원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 속에서 사형제도가 존치되도록 하며, 최소한 사법(死法)으로라도 있어서 하나님의 공의 원칙을 선언하도록 하는 일에 힘을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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