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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 생명 운동은 어떻게 이루어 질 수 있을까?
    우리사회와 기독교 2009. 1. 22. 22:39

    어느 시대에나 이 땅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해야 하는 일은 진정한 의미의 생명 운동에 동참하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경 전체에서 나타나 있고, 특히 사도행전에서 잘  나타나 있는 대로 타락한 인간은 죽이나 하나님은 살리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운동은 생명 운동이다. 이는 결국 생명은 그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의식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다.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생명운동을 할 수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생명을 위하다가도 필요한 경우나 위급한 경우에는 생명에 대해 취사선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이들을 진정한 생명 운동에로 이끌기 위해서는 각자가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과 함께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만이 모든 이들을 진정으로 생명의 길로 이끌어 가실 수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생명 운동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사람들을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하여 하나님 앞에 홀로 서서 결단하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사람이 되도록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둘째로,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바른 생명 인식 노력을 시작하게 된다.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이들은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시작하기에 생명이 진정 무엇인지도 알게 되고,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도 그것이 진정 생명인 이상 그것에 대해 생명에 부합한 의식을 가지게 된다. 인간 생명과 동물 생명의 차이를 의식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데, 이것도 근원적으로는 하나님 관계에서만 구별 가능한 것이다. 동물의 생명도 귀한 것이나 인간의 생명과는 큰 차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 관계를 가지지 않은 이들은 명확히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그 차이에 대한 인식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동물의 생명도 함부로 죽이다 보면 생명 자체를 무시하는 분위기로 나아가게 되기가 쉽다. 그래서 성경은 동물을 먹기 위해 죽일 수 있다고 허락하는 장면에서 그러나 그 동물들도 피채 먹지 말라고 하시어 인간다운 식사의 가능성을 말하고, 또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므로 죽여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다(창 9:4-6). 동물을 죽이다가 급기야 인간 생명을 앗아 가는 것도 쉽게 생각하는 것을 금하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분명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본적으로 그것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므로 모든 생명을 존중하되, 특히 인간의 생명은 거의 절대적으로 존중하도록 하는 가르침을 받고 있는 것이다. 동물권과 인간 생명의 차이가 분명히 의식되어야 한다.

     

         셋째로, 인간의 생명은 매우 작은 생명도,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도 모두 다 존중되어야 한다. 그것은 당위이다. 막 수정되어 아직 인간의 생영인지 조차도 알 수 없는 듯이 보이는 상태의 인간 생명도 그것이 인간 생명인 한 우리는 존중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수정란과 배아를 존귀하게 여기며[낙태 반대 운동의 근거], 수정란과 배아에 대한 실험을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수정란과 배아에 대한 실험 금지 운동의 근거]. 또한 우리는 죽어 가고 있는 사람의 생명이라도 인간의 생명을 인간 스스로 취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안락사 반대 운동의 근거].

     

     

     

         넷째로, 그런 생명 운동은 단순하게 주어진 생명은 존중하고 앗아져간 생명은 방치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형 폐지론은 어떤 의미에서 매우 기계적이고 단순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기독교 생명 운동은 모든 정황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존중하고 적용하여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인간들이 생명은 존중하도록 하기 위해 주셨던 살인 방지의 금령을 중시하며 고의로 살인한 자들과 그에 준하는 자들에게는 사형을 하도록 하신 그 본래적 의도를 존중하여 사회 속에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준중하며 살도록 하는 일에 힘쓰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창세기에서 사형을 말씀하신 하나님의 본래적 의도를 존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기독교 생명 운동은 하나님의 의도하신 사랑의 사람이 되고, 사랑하는 공동체를 이 세상에 있도록 하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생명 운동은 사랑의 분위기에서만 이루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사랑을 이 세상에 가득하게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생명을 존중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부다 우리 모두가 이런 사랑의 사람들이 되고, 우리들이 가는 곳마다 사랑과 생명의 힘이 넘쳐 날 수 있기 원한다.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사랑하게 하시며 살리신다. 우리도 가는 곳마다 미움과 시기와 죽임을 극복하고 사랑과 살리는 운동을 해야 한다. 여기에 하나님의 자녀의 형상의 한 측면이 드러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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