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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으로 본 우리 사회 윤리의식과 젠더문화우리사회와 기독교 2018. 3. 17. 22:34
<신앙세계> 594호 (2018년 4월호)에 기고 한 글을 여기에 올려서 많은 분들이 생각하고 논의할 수 있도록 합니다. 같이 생각해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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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으로 본 우리 사회 윤리의식과 젠더문화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me too) 운동”이 우리나라에서도 큰 영향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힘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힘과 권력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이용하는 일에 대한 미약한 저항이 미디어와 사회의식의 발전에 근거해서 이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이 일이 참으로 효과를 나타내려면 (1) 힘과 지위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이용하는 일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사회적으로도 비판하고, 사법적으로도 강하게 처벌하는 일이 있어야 하고(사회적 비판과 강한 처벌), (2) 일종의 무고(誣告)와 같이, 그렇지 않은데도 그와 같은 일이 있었다고 하는 일을 잘 찾아내는 일이 절실히 필요할 것입니다(명확한 사실 판단의 필요성). 한동안만 그리하다가 얼마 후면 다시 사회적 관행이라고 여기는 방향으로 돌아가서는 미투 운동도 그저 한 시대의 유행이 되고 맙니다. 그것은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디 우리 사회 속에서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한 동안만 들끓다가 저금 후에는 관심을 끊어 버리는 일이 없어야만 미투 운동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윤리 의식의 문제점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기에 이는 우리 사회의 문제만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지만, 이 짧은 글에서는 특히 우리 사회의 윤리 의식의 문제를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성(性)의 고귀성에 대한 의식을 상실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다른 성적인 문제가 있는 데에도 그런 것은 미투 운동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명확히 권력 관계의 갑(甲)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권력 관계의 을(乙)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행한 강압적인 성폭행과 성추행에만 한정시켜 논의하자는 것은 미투 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의 어떤 면을 발본색원하자는 의도에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라는 면에서 일면 의미 있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 사회의 성 윤리 의식이 좀 낮추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단면입니다. 사실 강압적인 것이 아니면 혼인 관계 밖에서의 성적인 관계는 남들이 전혀 관여할 것이 아니라는 분위기가 형성될까 무서운 면이 있습니다. 아니 솔직히, 이미 그런 의식이 우리 사회 내에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미투 운동은 잘 작용한다면, 어떤 면에서는 일반 은총 가운데서 우리 사회의 성 윤리를 좀 성숙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투 운동을 계기로 일차적으로, 어떤 방식으로도 힘 있는 사람들이 힘없는 사람들을 성적으로 착취하거나 이용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 이 땅에 정착되도록 해야 합니다. 같은 영역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도 그러하고, 전혀 관련이 없는 이들 간에도 성적인 착취나 이용이 사라지도록 하는 데 다들 힘써야 합니다. 이성간에도 그러하고, 동성 간에도 그러하지요. 여기까지가 미투 운동을 보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의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좀더 나아가 이하에 언급할 문제들도 생각해야만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군대 내에서 상급자와 하급자간의 성적인 이용과 착취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여러 이유에서 엄히 금해져야 하고 이런 금지에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모두가 동의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물론 군대 내에서 상호 동의하에 성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의 문제도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성적인 착취와 이용에는 사실 근자의 미투 운동은 언급하지 않으려고 하는 다음 문제도 포함된다는 것을 분명히 의식해야 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보수와 보상을 댓가로 성적인 착취와 이용을 하는 것입니다. 매매춘(買賣春)이라고 언급되는, 또 원조 교제라고 언급되는, 또는 연예계에서는 스폰서됨이라고 언급되는 일들도 사실은 문제라는 것을 우리 사회 안의 모든 사람들이 인식하여 그런 것도 심각하게 문제시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윤리 의식은 아주 낮은 수준에 있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보수와 보상을 제공하는 것도 결국은 그런 것을 제공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성(性)을 사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모든 면에서 좀 더 건전한 성 문화가 우리 사회에 정착하도록 하려는 노력이 있지 않으면 그것은 결국 우리 사회의 성윤리를 낮추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이점도 온 국민에게 알려야 합니다. 미투 운동을 기회로 이런 문제도 인식시키는 기회로 삼았으면 합니다.
젠더 문화?
때로 이 문제를 “젠더 문제”의 하나라고 언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용어를 아무 의식 없이 사용하면, 현대의 일정한 부류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젠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하는 결과가 된다는 것을 명확히 의식해야 합니다. 근자에 사람들이 사용하는 “젠더”(gender)라는 용어는 타고난 성은 중요하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 규정한 성[사회적 의미의 성]이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용어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우리 사회의 젠더 문화의 문제점은 (1) 아직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타고난 성(性) 중심으로 자신들의 성(性)을 규정하려고 드는 것이며, (2) 자신이 규정한 자신의 성(그것에는 자신의 성을 결정하지 않은 상태도 포함된다고 합니다. 이른바 “Q” people – queering people)에 따라 사람들이 자신을 대우하지 않는 것이고, (3) 미투 운동과 관련해서는 사회적 지위를 사용하여 강압적으로 자신의 젠더를 착취하거나 이용하려는 모든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3)에 해당하는 것만을 문제 삼는 것 자체가 이들이 말하는 ‘새로운 젠더 문화’를 확립하는 것의 한 부분입니다. 이 분들은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젠더 문화를 바꾸려고 합니다. 그래서 근자에 일어나고 있는 미투 운동을 사용해서도 우리의 젠더 문화를 바꾸려고 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3)을 문제시하는 것은, 조금은 다르지만, 우리가 처음에 언급한 미투 운동이 비판하고 고발하려는 점과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와 이런 젠더 운동을 하시는 분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같은 비판을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지위를 이용한 강압적인 성관계와 성추행 등은 거의 모든 사람이 문제라고 보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 점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 의해서 상당히 비슷한 문제가 지적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단은 미투 운동으로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 언급되고, 모든 사회의 성원들이 그것은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이런 것조차도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회는 그야 말로 심각한 사회일 것이니 말입니다. 얼마 전까지 미국과 우리를 비롯한 거의 모든 사회가 불편해 하면서도 쉬쉬하면서 그런 것은 별 문제가 아닌 듯이 취급하던 것을 미투 운동의 과정에서는 그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누구나 말하는 상황이니,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들을 심각하게 여기는 사회가 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에 머무른다면 우리 사회 내에서 어떤 분들이 매우 의도적으로 일으키려는 젠더 혁명(gender revolution)에 자신들도 모르게 포괄되는 것이 되고, 암묵리에 우리 사회가 이렇게 변화된 젠더 문화를 받아들인 사회가 되기에 우리는 매우 주의하여야 합니다.
나가면서
그러므로 우리는 미투 운동이 일어나는 이 상황 속에서 미투 운동의 직접적인 사례들만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에서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성 윤리 의식이 진정 고도(高度)한 것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것은 우리들의 노력에 의해서는 다 되지 않고 진정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의식하고 그런 놀라운 능력에 의존하는 데에까지 간다면 그것은 일반 은총에 더해서 특별 은총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우리 사회가 그래도 사람들이 살만한 사회가 되려면, 일반 은총 거운데서, 일차적으로 미투 운동이 고발하고 비판하는 사례들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다음 같은 일을 행해야 할 것입니다.
- (1) 성적 착취와 추행에 대해서 강하게 “아니요(No!)”라고 말하는 일의 일상화
(이런 점에서 “me first (나 먼저 바르게 하기) 운동”과 “with you (연약한 이들과 함께 하기) 운동이 중요합니다.
- (2) 이런 문제를 문제로 제기하는 일이 가능하게 하는 사회되기
(즉,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에게 그 어떤 피해도 있지 않도록 하는 일 보장)
- (3) 이 문제와 관련해서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절차적 합리성을 가진 사회되기
(정확한 조사 가능성 보장, 사실일 경우 엄정한 처벌 실시)
그리고 그에서 더 나가 혼인 관계 밖에서의 성적인 관계의 문제점을 문제로 느끼도록 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일반 은총 가운데서 우리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의 최대한 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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