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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윤리로 본 '유전자 편집'"우리사회와 기독교 2019. 2. 20. 22:41
<신앙세계>, 통권 602호 (2019년 2월호): 36-39에 실린 "기독교 윤리로 본 '유전자 편집'"이라는 글을 여기 게시하여 보다 많은 분들 읽고 생각하도록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 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그 문제들에 대한 기독교적 통찰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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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윤리로 본 “유전자 편집”
과학 기술은 매우 진전하여 이전에는 불가능하게 보였던 것을 많이 이루어 내고 있다. (1990년에 시작하여 2003년에 마쳐진 소위 ‘인간 지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가 마쳐진) 이제는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분석하여 유전자의 어떤 부분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찾아내고 어떤 것이 문제가 되는 지, 또는 앞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지를 찾아 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이와 함께 등장한 것이 문제가 되는 유전자를 편집하면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시도이다. 이와 같이 아주 정밀하고 전문적인 과학 기술에 대해서 우리들은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 것인가?
현황 파악
일단 지금까지 발전된 과학 기술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유전자의 문제가 될 부분을 제거해 문제를 해결하는 유전자 편집(genome editing) 기술에 의하면, 소위 “유전자 가위”를 사용해서 “손상된 DNA를 잘라내고 정상 DNA로 갈아 끼우는”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정도이다. 유전자 가위란 “유전자에 결합해 특정 DNA 부위를 자르는데 사용하는 인공 효소”이다. 1세대 유전자 가위라고 하는 1980년 대 중반에 개발된 징크핑거 뉴클레이즈(Zinc Finger Nuclease, ZFN), 탈렌(TALENs: Transcriptor Activator-Like Effector Nucleases)을 사용하는 2세대 유전자 가위를 거쳐 2012년에 발표된 3세대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CRISPR)가 개발되었다.
크리스퍼 기술은 “유전자 편집의 대상이 되는 DNA의 상보적 염기를 지니는 RNA를 지닌 크리스퍼가 표적 유전자를 찾아가 '카스 9'이라는 효소를 이용하여 DNA 염기 서열을 잘라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한다. “안내 역할을 하는 RNA가 교정을 목표로 하는 DNA 염기서열에 달라붙으면 Cas 9가 DNA의 특정 부위를 잘라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1세대 및 2세대와 달리 복잡한 단백질 구조가 없고 DNA 절단 정도가 더욱 깊다.”고 한다. 그래서 “돼지의 장기에 DNA를 제거하여 인간에게 이식할 때의 문제점을 해결하거나, 줄기세포, 체세포의 유전병의 원인이 되는 돌연변이 교정, 항암세포 치료제와 같이 다양한 활용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하고 있다. 과거의 유전자 재조합 기술은 유전자 하나를 잘라내고 새로 바꾸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이에 비해 “매우 단순한 구조를 가짐으로써 세포 안으로 부드럽게 들어가는” 크리스퍼를 사용한 기술은 유전자 편집의 시간을 단축하고, 또한 “DNA 절단 프로그래밍과 동시에 여러 곳의 유전자 편집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시스템 오작동에 대한 대비가 없어 잘못하면 엉뚱한 부분을 절단해 버리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미숙한 임상 적용으로 인한 부작용 발생, 치료가 아닌 인간 유전자의 증강, 유전자 편집 식물의 규제 곤란, 멸종이나 복원을 통한 생태계의 혼란” 등의 문제가 일어날 수 있어서 “생태계 문제나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상에 대해서 NHK 게놈 편집 취재반, 『게놈 편집의 세계: 게놈 편집은 우리와 생명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이형석 옮김 (서울: 바다출판사, 2017); 한국 생명유리학회와 특히 근자의 크리스퍼 기술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신 강릉대학교의 전방욱 교수의 『DNA 혁명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생명 편집의 기술과 윤리, 적용과 규제 이슈』 (서울: 이상북스, 2017); 아주대학교 약학과 김홍표 교수님의 『김홍표의 크리스퍼 혁명 DNA 이중나선에서부터 크리스퍼 유전자가위까지』 (서울: 동아시아, 2017); 연세대학교 생화학과의 송기원 교수님의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생명 과학 기술의 최전선, 합성 생물학, 크리스퍼, 그리고 줄기 세포』 (서울: 사이언스북스, 2018) 등을 참조하였다).
https://www.ted.com/talks/ellen_jorgensen_what_you_need_to_know_about_crispr/transcript?language=ko
“책임 있는 기술”을 요청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단 이 분야의 최전선에서 연구하는 학자들도 유전자 가위 기술을 사람에 대해 쓰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송기원 교수님도 만능 가위의 불편한 진실을 언급하고, 또한 그의 책 18장의 제목을 “인간 배아 유전체 편집이 불러온 논쟁: 중국의 유전자 가위 연구, 충격과 한계”라고 하며, 19장의 제목을 “인간 배아 유전체 편집의 한계: 유전병 없는 아기 얻으려 유전자 교정? 위험한 시도!”라고 부른다. 또한 20장의 제목도 “인간 배아 유전체 편집의 현황: ‘맞춤 아기’ 가능성, 윤리 논란 부른다”라고 하여 인간에게 대하여 이런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과연 어떤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전방욱 교수님도 생식세포 치료와 증강의 기술적, 문제와 함께 윤리적 문제도 지적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이런 태도들 우리들은 존중한다.
Cf. https://www.ted.com/talks/jennifer_doudna_we_can_now_edit_our_dna_but_let_s_do_it_wisely
기본적으로, 아직도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 듯이 말하지 말고, 우리들이 지금의 기술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서, 지금의 기술로 우리들이 할 수는 있으나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과학과 기술의 “책임 있는 사용”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을 책임 있는 과학을 하는 것이고, 책임 있는 기술의 사용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던 초기부터 우리들은 항상 책임 있는 과학과 책임 있는 기술이 되어야 한다고 주문해 왔다. 물론 과학과 기술은 인격적 주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과학과 시술이 그 자체로 책임 있는 어떤 것이 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과학과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이다. 과학을 하고 기술을 발전시키며 활용하는 사람이 인격적 주체로서 자신들이 하는 과학이 과연 어떤 것을 할 수 있으며, 할 수 없는 지를 분명히 하고, 또 할 수는 있으나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분명히 분별하여 할 수 있으며 해야 하는 것만을 시도하며 발전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하여, 할 수 있으나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해서는 안 되고, 또 지금으로서는 할 수도 없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인양 말하거나 시도하는 일을 하면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생명 과학자들과 생명 공학자들에게 이와 같이 책임 있는 자세로 생명 과학과 생명 공학을 하여 가기를 바라게 된다.
이를 위하여 앞으로 과학계로 나아 갈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진정한 책임성을 그 폭넓은 의미에서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일에 힘을 써야 한다. 동시에 전문 과학계에 대하여 비전문가인 우리들은 항상 현황을 정확히 주목하면서 때때로 전문가들이 상실할 수 있는 균형감을 상실하지 않도록 주변에서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전문가들을 통해서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지만, 그들을 제대로 돕거나 그들을 잘못 되지 않게 하는 이들이 주변의 광범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일반 교양인으로서 특히 해서는 안 될 것에 대해서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는 아마튜어 집단이 상당수 있어야 우리 사회의 문회를 건전하게 할 수 있다. 이는 과학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들은 대개 과학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과학자들의 음성만을 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심을 지닌 일반 대중이 점점 더 정확하게 살펴보는 일을 해야만 진정 책임 있는 과학자들과 책임 있는 생명 공학자들을 잘 보호하고 지원하여 이 땅에 책임 있는 생명 과학과 생명 공학이 나타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부디 과학자들과 우리들 모두가 이런 “책임 있는 존재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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