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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산에 이르기 전에신학이야기 2012. 7. 12. 00:11
출애굽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홍해를 건너고 마라 지역을 지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광야에 이른 것은 출애굽한 지 3개월 지난 다음 이라고 하였습니다(출 19:1). 그 전에 출애굽 후 2월 15일에 이른 곳은 엘림과 시내산 사이의 신광야(מִדְבַּר סִין라고 헀다(출 16:1). 이는 아마도 셈족들이 달(moon)을 신격화하여 섬기던 데서 유래한 지명인 듯하다고 한다.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먹을 것 때문에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다고 한다(출 16:2, 3). 그곳은 그야 말로 아무 것도 없는 광야였기 때문이다.
가도 가도 비숫한 형태의 광야만 나타났다.
그들에게 "해질 때는 고기를 먹게 하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라"고 말씀하신 대로(출 16:12)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마른 후에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은 세미한 것"이 주어졌다(출 16:13, 14). "이것이 무엇이냐?"(만후)하던 백성의 질문에 대해서 모세는 "이것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는 양식이라"고 하였고 그 질문을 생각하면서 이스라엘 백서들은 그 양식을 "만나"라고 이름 붙였다(출 16:31).
이로써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이시는 하나님을 더 확신하게 되었고, 그가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다. 더구나 제 육일에는 두 배를 거두라 하시고 안식일에는 만나가 주어지지 않으므로 참으로 하나님께서 주어 먹이시는 것임을 확신하고 안식일에는 안식해야 함에 대한 큰 교훈도 얻었다.
신 광야를 떠난 백성들이 "도움'이라는 뜻의 르비딤(Rephidim, רפידים)에 이르러 장막을 쳤을 때에 백성들은 물이 없으므로 모세를 원망하였다(출 17:1-3). 그곳도 참으로 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들은 르비딤에는 가지는 못하였다.
(전통적으로 르비딤으로 추정되는 장송에 대한 지도)
전통적으로 리비딤 골자기로 추정되는 곳의 현재 모습은 다음 같다고 한다.
그리나 애굽에서 시내산으로 가는 길들은 거의 광야, 후에 이스라엘 땅에서 경험할 광야 와는 다른 거의 사막에 가까운 광야였고, 냉방 된 버스로 운행하는 우리들이지만 계속해서 1불에 두 병하는 생수를 필요로 하였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마름을 같이 경험할 수 있었다.
우리가 과연 모든 정황 가운데서 우리들을 구원하여 지금도 우리를 인도하여 가시는 하나님을 철저히 의존하며, 조금도 원망하는 것이 없어야 하겠다는 교훈을 실천적으로 받은 시내산까지의 여정이었다. (2012년 6월 20일의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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