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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이 청결한 자
    교회와 설교 2010. 6. 2. 08:41

    2009년 11월 19일강번교회(허태성 목사님 시무)의 새벽기도회 시간에에 강설했던 내용을 이동렬 강도사님께서 새벽기도회 시간에 그대로 치신 것이 강변교회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기에 여기 다시 소개합니다. 귀한 기회를 주신 강변 교회와 이런 작업을 해 주신 이동렬 강도사님께 감사드리면서 그 유익을 더 많은 분들이 나눌 수 있도록 여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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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야고보서 1장 5-8절; 마태 5:8

    약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약 1: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약 1: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마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오늘은 팔복 말씀 가운데서 "마음이 청결한 자"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알 것 같으면서도 오해의 소지가 많은 말씀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이 말씀을 성경적 관념보다는 한국적인 관념으로 접근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유행과 맞아 떨어져서 청결한 것에 대해 이해하고 그런 이해에 근거해서 마음을 닦으려고 합니다. 심지어 오늘날에는 여기에다가 사람들은 마음을 잘 닦기 위해서 마음 공부를 한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불교에서 하듯이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닦고 닦다 보면 우리 마음이 정결해 지리라고 여깁니다. 이것이 다 자력 구원(auto soteric) 종교의 전통입니다. 우리가 우리 힘을 내서 하면 부족하지만 괜찮아질 거라는 것입니다. 싯타르타의 마지막에서도 열반에 들으려고 할 때에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끝까지 노력하라." 끝까지 노력해서 이룰 수 있으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닦아서 괜찮아질 거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이렇게 닦아가지고서는 절대로 괜찮아질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조금만 타락했으면 스스로 극복할 수 있을 정도만 타락했으면 된다. 가능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바에 의하면 우리 마음은 그 정도로 타락한 것이 아닙니다.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이를 우리는 십자가 앞에 오기 전까지는 절대 모른다. 우리가 어느 정도 문제가 있겠거니 합니다. 다 문제가 있을 거라고 여기고 이런 저런 종교를 사람들이 추구하지만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인간의 노력으로 정결하게 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합니다. 사실 이것이 제대로 된 해석이 아님에도 이러한 쪽으로 가게 되기가 쉽습니다. 이것은 아닙니다. 사실 주님께서 너희가 마음을 깨끗하게 되도록 노력해라는 것은 아닙니다. 너희는 심령이 가난하다고 했기 때문에 이미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노력으로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중도적인 방식을 취하는데 자신이 노력하고 하나님께서 마무리를 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도 우리에게 익숙한 것입니다. 이는 마치 수능시험 보기 전 날쯤에 학생 하나가 칠판 앞에 가서 진인사대천명이라고 쓰는 것과 비슷합니다. 사람이 할 일은 다 해놓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식으로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 해놓고 하나님께 이루어달라고 합니다. 사람이 노력하고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이를 이루어 주실 수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 동양적인 사상으로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합니다. 새벽기도회도 자칫하면 이러한 것과 비슷해 질 수 있습니다. 마치 새벽에 정화수를 떠놓고 제사를 드리는 것과 같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적으로는 아무리 지성을 들어도 하늘이 감동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타락성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성을 다들여 하나님께서 감동해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아닙니다. 우리가 노력을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리라고 여기면 안 됩니다.

     

    이런 생각 배후에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하면 하나님의 마음도 여기에 올 거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교의 기도의 큰 특성이 이런 것입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대조되었던 바알과 아세라의 제사장들을 생각해봅시다. 이들은 참으로 오래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오래 기도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 기도한 것에 더해서 이들은 몸을 상해 가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이들은 이렇게 하면 자신들이 섬기는 신이 자신들을 돌아봐 주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인간 편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머지를 완수해 줄 거라고 여깁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먼저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이름으로 이것이 오랫동안 거론되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끝은 우리가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천주교의 생각입니다. 사람들이 은혜에 근거해서 열심히 노력하면 구원에 이루어질 수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천주교회가 사람들을 이렇게 가르쳐 온 것입니다. 이것이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지성이나 노력이 아닙니다. 그러나 천주교 사상에 의하면 마지막은 우리의 하는 것입니다. 이를 바라보며 우리가 성령님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려 하느냐는 바울 사도의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정말 마음이 청결한 자는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ㅁ낳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기독교인과 같이 생각하지 않는 이 사람이 바로 키에르케고어( Kierkegaard)입니다. 이 사람의 이름의 뜻은 공동묘지이고 사람들이 흔히 그를 우수의 철학자라고 말합니다. 그가 쓴 책에 <마음의 청결함>(Purity of Heart)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고민하면서 마음의 청결함은 오직 하나만을 원하는 것(to will only one thing)이라고 합니다. 우리 마음을 닦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만을 원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으면 마음의 청결하고 이것이 무슨 관련이 있는가 생각이 드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이것이 옳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경을 잘 해석하는 전통을 당연시 하는 것입니다. 아주 흥미롭게도 신앙이 좋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나뉘지 않고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마음이 청결하지 않은 것은 마음이 나뉘었거나, 아니면 한 마음을 갖고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녀들의 이 세상에서의 행복과 안녕이 우리 지성의 목표가 되면 자녀가 바로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구해야 하고 한 마음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것만을 위해 살고 이것만을 위해 우리의 마음이 집중되어 있을 때에 우리의 마음이 청결한 것입니다. 다른 것에 집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을 가득차게 될 것만을 바라야 합니다. 출발점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가 한 마음으로 원해야 합니다. 어떤 때는 이것과 저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보십시다. 마음이 청결한 것 같이 느껴지는 어느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어떤 때에 주님께서 나와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것은 비성경적인 사고입니다. 나 혼자서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과 나의 경험을 비교해서 내 경험이 성경과 다를 때에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성경에 복종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이상한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느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해야 합니다. 내 느낌과는 상관없이 성경의 말씀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어도 내 마음은 아직 청결하지 않은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일단 선언하는데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님 내가 다른 것을 붙잡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은 것입니다. 어느 상황이든지 오직 내가 주님께 속했다는 사실만 기뻐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본다고 합니다.

    계 22: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볼 수 없는 자이십니다. 딤전 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따라서 하나님은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안 보이지만 나중에는 보이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절대 보이지 않는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하늘에 가게 되면 우리도 영광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늘에 가게 되면 우리가 지금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더 완벽하게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날마다 하나님을 보며 삽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가 주님과 기도하기 위해 주님과 교제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교제하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주님은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그분을 우리는 날마다 보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 누구입니까?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주님의 얼굴을 뵈옵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도 늘 주님의 얼굴을 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이 세상의 다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성경이 말하는 마음의 청결함을 우리 마음속에 갖고 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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