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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신학이야기 2006. 7. 8. 20:23
<빛과 소금>에 기고한 글을 미리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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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고생을 하고 죽기도 하였으며, 많은 병들을 의학과 과학을 사용하여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최근에도 에이즈, 사스, AI, 암 같은 다양한 병들로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고 죽어 가고 있다. 우리는 그런 병들을 성경적으로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1. 창조와 타락의 빛에서
처음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에는 이 세상에 병이 전혀 있지 않았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올 때에는 모든 것이 선했기 때문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신대로(창 1:31),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건강하고 온전한 삶을 의도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죄악을 범한 후에 그 결과로 사람과 피조계 전체가 저주 하에 있게 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는 수많은 문제가 생겼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다양한 형태의 병이다. 타락 후에 창조 때에는 있지 않았던 “가시와 엉겅퀴”가 이 세상에 있게 된 것과 같이(창 3:18), 수많은 병들도 인간의 죄에 대한 결과로 우리에게 있게 된 것이다.
그 병들은 때로는 타락 후의 상황에서 비교적 자연스러운 일종의 인과응보로 주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께서 특정한 사람들에게 병을 내려 형벌하시거나 징계하시는 형태로 주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인플루엔자가 돌고 있는 상황에서 건강에 유의하지 않고, 피곤하게 살며 외출 후에 손을 씻지 않고 하면 자연스럽게 감기에 걸리기가 쉽다. 이는 타락 이후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의 구조 속에서 우리에게 비교적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다. 또 때로는 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병을 내리거나 하신 예를 구약과 신약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다.
2. 그러나 기계적인 대응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됨
이런 점에 주목했던 옛날 유대인들은 병은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공식을 가지고, 이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려고 잘못 생각한 적이 많이 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런 생각에 근거해서 예수님께 질문한 적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나면서 소경된 자에 대한 질문이었다. 제자들은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라고 질문했었다(요 9:2). 그들은 죄와 병을 기계적으로 연결시키는 데 익숙했었고, 그런 논리에서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의 경우를 들어서 예수님께 질문한 것이다.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이 아니고, 그의 생애 가운데서 소경되거나 병에 걸린 사람들에 대한 제자들의 인식이 어떤 것이었을까는 매우 자명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기계적인 대응에 대해서 비판적인 태도를 표하셨다(요 9:3). 물론 때때로 주께서 섭리적으로 심판하심으로 어떤 이들이 병에 걸리는 경우가 있다고 하신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께서는 기계적으로 어떤 죄에 대하여 반드시 병에 걸리게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일을 하지 않으신다. 이 세상의 병은 죄 때문에 주어진 것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기계적인 대응을 찾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지만(롬 6:23), 때로는 죄악을 범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그가 평안히 죽을 때까지 그대로 두시다가 죽음과 죽음 이후에야 그를 벌하시는 경우도 있다고 성경은 말한다(시편 73:3-9 참조).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평안한 삶을 사는 죄인들은 그런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라고 할 만한 것이다(시 73:18-19).
또한 때로는 주께서 불신자들에게 섭리적 심판을 내리기도 하시며, 심지어 주의 백성 중에 죄를 범하는 이들에게는 징계의 손길을 베풀어 그들로 약하여 지게도 하시고 병들게도 하신 예가 있다(고전 11:30 참조). 그러나 그것도 기계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애매하게 고난당하고 병들어 죽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서, 잘못된 피를 수혈 받음으로 AIDS에 걸리게 되는 경우들이 이에 해당한다. 신앙을 연단하여 욥의 신앙을 정금 같은 상태가 되도록 하기 위한 욥의 고난의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병들고 고난당하고 죽는 일에 대해서 어떤 한 가지 시각만 가지고 기계적인 판단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3.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로, 우리는 병을 하나님의 심판으로만, 또는 마귀의 역사로만 보는 견해를 가져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서 병에 걸리는 모든 경우를 천벌을 받은 것처럼 생각하거나 말해서는 안 된다. 모든 병은 다 귀신 때문에 주어진 것이라고 하면서 귀신을 몰아내야 병에서 낳게 된다고 생각하거나 말해서는 안 된다.
둘째로, 우리는 흔히 사용하는 병마(病魔)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 이런 말을 사용하고 기도하다보면 병은 모두 마귀의 작용으로 생겨지는 것과 같이 말하게 되기 때문이다.
셋째로,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관련하여 삶의 온전한 의미를 가지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도록 하나님의 특별 계시와 일반 계시의 빛에서 노력하여 살면서, 혹시 우리에게 병이 있게 되면 주께서 이 병을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겸허하게 물으면서 혹시 이것이 우리의 잘못을 교정하시거나 아니면 우리를 성숙시키시기 위한 것인지를 물으면서 다음과 같은 태도를 지녀 나가야한다:
(1) 이 부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주께서 초자연적인 방식으로나 아니면 의사 선생님과 약을 사용하시는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우리를 건져 주시기를 바라며 간절히 기도해야 하고,
(2) 혹시 주께서 우리가 죽기까지 병을 지니고 가기를 원하시면 그것으로 족한 줄 알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연약함 가운데서 더 잘 드러나기를 바라면서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신앙을 유지하며 병과 함께 살아가며 주변의 같은 연약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위로하는 일을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3) 종국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극치에서는 더 이상 병드는 것과 죽은 것이 없음을 특별 계시에 근거해 아는 사람으로서 그 나라의 극치가 속히 임하여 오도록 기도하기를 그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병과 고난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와 관련해서도 하나님을 의존하고 하나님과 관련해서 병을 극복하거나 병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지녀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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