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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도인의 혼인식이 가지는 의미
    우리사회와 기독교 2025. 1. 12. 18:49

    <월드뷰> 294 (2-24년 12월호): 37-41에 실린 글을 여기도 올려서 더 많은 분들이 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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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인으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혼인 제도를 내셨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혼인은 창조 규례의 하나이다. 이는 사람들이 혼인해서 살면 좋겠다고 판단하여 혼인하여 살거나, 그저 사람들이 계약에 의해 혼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잘못 생각하든지,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내신 혼인 제도를 따라서 우리들이 혼인하여 살아간다는 것을 믿고 그런 의미에서 혼인 식을 하며, 그 결과 혼인 생활을 하여 나간다. 그러므로 혼인에 대한 생각이나 혼인 식에 대한 생각이나 혼인 생활에 대해서도 우리들은 세상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다. 그중에서 이번에는 기독교적 혼인 식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그리스도인의 혼인식

     

    혼인 식은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짝지어 주시고 그러니 이제는 한 몸이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하시는 의식(ceremony)이다. 그래서 학위 수여식 후에 학문하는 사람들이 행진(academic procession)하듯이 혼인 식이 마치면 신랑과 신부가 행진(wedding procession)을 한다. 이는 상직적인 행위이다. 기독교적 혼인 식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짝지어 한 몸으로 맺어 주심을 드러내고, 그러하기에 혼인 식을 하기 전에는 두 사람이었던 이들이 이제 그 개성을 포기하지 않지만 이제는 두 사람이면서 동시에 한 몸임을 온 세상에 선포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기독교적 혼인 식의 본질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한 몸으로 맺어 주시는 것이며, 이것을 공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혼인 식에서 이 두 사람은 이제 한 몸이라고 선언되고, 그렇게 한 몸 됨을 평생 구현해 나간다. 신혼 첫날의 성적인 교제에서 이 한 몸 됨의 극치(consummation)가 실현된다. 그래서 구약 시대부터 신혼 첫날의 성적인 교제를 혼인의 극치(consummation)라고 표현해 왔다. 이렇게 남편과 아내로 선언된 사람들은 이 혼인의 테두리 안에서 성적인 교제로 표현되는 한 몸 됨을 평생 드러내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영적인 하나 됨, 정신적-심리적 하나 됨, 경제적 하나 됨이 이미 선언되었음을 믿으면서 그런 하나 됨을 구현해 나가는 일의 한 부분으로 물리적-신체적 하나 됨을 경험해 가는 것이다.

     

    기독교계에서는 합법적 혼인 관계 밖에서의 성적인 교제를 사통(fornification)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죄의 하나로 여겼다. 혼인 관계 밖에서는 성적인 교제가 죄인데, 혼인 관계 이래서는 성적 교제가 합법적인 것이며,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그것도 성령님에게 의지해서 행하도록 되어 있고, 그런 것은 거룩하고 복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여기에도 다음과 같은 말씀이 적용된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 4:4, 5). 혼인식은 혼인한 사람들의 성령님과 함께 동거하여 나가는 일의 모든 것을 합법적일 뿐만 아니라 거룩하게 하는 공적 의식이다. 그러므로 사적 혼인식은 허락되지 않고 혼인식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행하는 공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상태에서의 기독교적 혼인 식은 온 교회가 행하는 교회적 의식이다. 이것이 공적인 일이라는 말이다. 혼인이라는 지극한 사적인 것이 그저 사적인 것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으로 행해지고 온 세상에 선포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예전 유럽에서는 이 혼인 식 때 목사님들이 발행한 혼인 증명서가 이 사람들이 혼인한 증거로 사용되었다. 점점 사회가 세속화되면서 예배당에서 하는 혼인 식을 세속 기관에 다시 등록하는 시민적 요식행위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것은 사회가 세속화된 모습이다.

     

    그렇기에 혼인 식에서 가장 중요한 분은 이 일을 이루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기독교적 혼인 식에서 다른 어떤 존재들이 중심을 차지하지 않도록 모두 조심해야 한다. 전통적으로는 양가의 부모나 양가의 가문(家門)들이 중시되었고, 요즈음은 혼인 당사자인 신랑과 신부가 중시되지만 그 모든 것이 다 질못된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두 사람이 사랑해서 혼인하러 나아 오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짝지어 주심을 믿으면서 하나님 앞에 나가 서야 한다. 그것이 혼인하러 나아가는 마땅한 태도이다. 양가 부모나 양가의 모든 사람들도 다 같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짝지어 주시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 이렇게 혼인 식의 중심은 하나님께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의 언약이 가장 기본적인 것이고 하나님 안에서 두 사람과 양가가 언약을 맺는 것이다.

     

              혼인 집례자의 태도

     

    그러므로 혼인 집례자가 먼저 이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자신이 하나님이나 그리스도의 대리자(vicar)로 이 혼인을 집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선언해야 한다. 이것이 천주교 혼인 식인 혼배성사나 영국 성공회 중에서 고교회(high church)와 우리의 혼인 식의 차이다. 우리는 혼인 집례자가 하나님이나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짝지어 주시는 일에 자신도 한 부분을 감당하여 섬기는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이 혼인 식이 하나님 중심의 혼인식이 되게끔 미리 교육하여 준비시키고, 그렇게 집례해야 한다. 그래서 혼인 집례자도 두렵고 떨림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

    혼인식이 과연 혼인 예배인가 아닌가 하는 논의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든지, 찬송과 기도와 성경 봉독과 말씀 선포, 그리고 축도(benediction)하여 하나님께서 복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일 등의 예배의 요소가 사용되는 한,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하는 일답게 이 일을 집례해야 한다.

     

    그러므로 혼인 식 자체가 하나님 중심이 되게끔 모든 것을 인도해야 한다. 준비에서부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이 과정에서 하나님이 중심이심이 잘 드러나야 한다. 이 일을 위해 일단 첫 순서로 화촉(華燭)을 밝히는 순서를 없애도록 잘 교육해야 한다. 사실 이것은 국적을 모르는 일이 우리에게 도입된 이상한 순서다. 화촉을 밝히는 것은 신방의 조명을 하는 일이니 이것이 혼인식 순서로 올 일이 아니다. 더구나 혼인 식을 예배로 한다면 종교개혁하면서 우리들은 예배하면서 촛불을 사용하는 것을 다 배제하였으므로 그런 역사의식을 가지고 그 정신에 따라서 예배 중에 촛불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미리 촛불을 켜 놓아서도 안 된다. 예배식 안에 모든 촛불을 제거하는 것이 철저한 종교개혁의 정신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루터파 교회나 성공회는 예배 식에 관한 한, 철저한 종교개혁을 다 이루지 못한 모습을 가지고 있음을 의식해야 한다.) 마지막에 축도를 할 때도 집례자 자신이 복을 내릴 수 있는 것 같이 아니하고, 주께서 이 새롭게 시작하는 가정에 복을 내려 주시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다. 이렇게 집례자가 앞장서서 하나님 중심의 태도를 잘 드러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혼인식을 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제일 중요한 것은 성경적 의미를 강조하시는 목사님의 지도를 따라서 혼인하는 당사자들이 참으로 하나님 중심의 혼인 식을 하려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 서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부로, 한 몸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고대하는 마음과 태도가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일생일대의 중요한 것, 또한 그저 우리 가문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어 주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엄위한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의 재가를 바라는 마음으로 혼인 식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서 그날 신랑과 신부 될 사람이 가장 참된 예배자로 있어야 한다. 그러니 중요한 분은 당연히 우리가 아니고 우리를 짝지어 주시고, 한 몸이라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혼인 당사자들이 참으로 하나님께 찬양하고, 기도하며, 주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을 이루려고 해야 한다. 혼인하는 그날 예배할 때의 그 엄위와 거룩성을 가지고 평생 그렇게 예배하는 사람으로 있어야 한다. 그래도 혼인하는 날에는 좋은 옷을 잘 차려입듯이 우리는 예배 때마다 될 수 있는 대로 제대로 예를 갖추어 입고 예배해야 한다. 예배에 관한 한, 혼인식에서나 평생의 예배에서나 동일한 태도와 자세로 하나님께 우리를 구속하심에 감사해서 예배해야한다.

     

    그런데 혼인 식 때는 그에 더하여 하나님 앞에서 서약을 한다. 이것 때문에 기독교적 혼인 식은 그저 두 사람 사이에 약속이나 시민적 계약(civil contract)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의 서약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관련하여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서약은 기본적으로 성경적 의미의 언약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새 언약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주어졌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에게는 그 새 언약의 삶중의 하나로 혼인하여 사는 것도 들어 있음을 의식하면서 이 혼인 서약에서 우리가 이루는 가정이 그저 가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새 언약에 속해 있는 언약의 가정임을 의식하면서 서약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혼인은 그저 사회적 계약이 아니다. 하나님의 새 언약에 속한 새 언약의 가정을 만드시는 것을 깊이 의식하면서 이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가정을 하나님께서 창설하시는 일에 우리 두 사람을 사용하셔서 그렇게 하심을 믿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이 서약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이상적인 경우에 혼인 식은 언약의 가정에서 자라난 두 사람이 이제 두 언약의 가정에서 독립하여, 이 두 사람을 하나님께서 또 하나의 새로운 언약의 가정으로 만들어 주시는 일로 나아가는 행위다. 혼인 의식 전체가 그러하지만, 특히 혼인 서약이 그런 의미를 가진다. 이렇게 우리의 혼인은 언약적이고, 우리의 혼인 서약이 언약적인 것이다. 그 은혜 언약 자체가 교회와 관련된 것이므로 우리는 혼인을 교회적 의식으로 행한다.

     

    그렇기에 우리의 서약도 중요하지만 그 서약 후에 기도하여 주께서 이 일을 이루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 기도 후에라야 두 사람이 남편과 아내 된 것을 공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그 공적 선언의 말미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동원해서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19:6)는 말씀을 하게 된다. 이것에서도 혼인식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성도들은 어떤 의미로 혼인식에 참가해야 하는가?

     

    그러므로 성도들이 기독교적 혼인 식에 참여할 때 가장 먼저 삼위일체 하나님께 경배하려는 마음으로, 즉 예배하려는 마음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런 태도의 결여가 오늘날 성도들의 가장 큰 문제의 하나다. 비교적 좋은 신자들도 혼인 식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가는 분들은 매우 드믈다. 그러나 참된 부흥이 일어나면, 우리는 혼인 식도 가장 먼저 하나님께 경배하기 위해 가게 된다. 그리고 이 예배 중에서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짝지어 주셔서 한 몸으로 만드시고 그렇게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일(opus dei)의 증인으로 혼인 식에 참여하게 된다. 혼인 식에서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놀라운 일을 목격하고, 그 일에 증인이 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하나님 편에서의 증인으로,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신랑, 신부 편에서의 증인으로 참여하여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하나로 만드셨음을 증언하고, 신랑과 신부가 서약을 하여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참여하였음에 대한 증인으로 서는 것이다. 대표로 두어 사람이 서명하지만 그 사람들만이 증인이 아니고 혼인 식에 참여한 우리 모두가 증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참된 하객(賀客)으로 혼인식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니 먼저 참된 예배자요, 참된 증인이 되어야 참된 하객, 즉 이 좋고 경사스러운 일에 대해 참으로 축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이 바른 하객은 혼인 식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 두 사람과 그들이 새롭게 이루는 새로운 기독교 가정, 이 언약의 가정을 위해 기도하여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참된 언약의 복을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하게 된다. 이것이 가장 이상적 상황에서의 하객의 모습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혼인 식의 하객으로 참여할 때에도 우리는 자신들이 진정한 하객이기를 원해야 한다. 그러러면 첫째로 혼인 소식을 들을 때부터 그 이전부터 우리가 계속해서 힘쓰고 있던 대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더욱 힘써서 그들이 하나님과 연관되어 진정한 복의 대상이 되도록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이심으로 참으로 믿는다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결혼하는 사람들을 참으로 축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믿고 혼인 식에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우리가 위에서 언급한 진정 복된 혼인식이 된다.

     

    그러나 믿지 않는 분들의 혼인 식에도 우리는 일반은총 가운데서 그들의 가정이 상대적으로 좋은 가정이 되기를 위해, 그리고 그런 상대적으로 좋은 가정들이 이루는 이 사회가 상대적으로 선한 사회, 그래도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위한 기도를 해야 한다. 이것이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가 일반적 행사에 참여할 때에 가져야 하는 태도다. 물론 우리는 그저 그것으로 머물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주께서 특별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기를 위해 속으로 간절히 기도하면서, 이런 가정에도 일반은총 가운데서의 은혜가 있기를 간구하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늘 속으로 간절히 간구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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