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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도인의 성경적 정치 참여 방식에 대한 한 논의
    우리사회와 기독교 2012. 11. 17. 19:11

     

    신동식 목사님의 <그리스도인의 정치 색깔>이라는 흥미로운 책에 발문으로 쓴 것을 조금 고쳐서 여기 올려 봅니다. 많은 분들이 읽고 유익을 얻기 바라면서..

    그리고 곧 나올 신 목사님의 책도 많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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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인의 성경적 정치 참여 방식에 대한 한 논의


    개혁신학에서는 삶의 모든 영역이 다 하나님의 것이고, 특히 우리의 구속주되신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시고 선언하신 것에 근거해서 삶의 그 어떤 영역에서도 열심히 하나님의 뜻을 구현해야 한다고 항상 가르쳐 왔습니다. 그 영역에서 정치 영역이 제외되어 본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개혁신학에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자신이 사는 지역과 국가의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열심히 참여 해 왔습니다.

     

          이에 가장 충실한 이들은 역시 화란 개혁파 전통을 형성시킨 화란의 개혁파 그리스고인들과 스코틀란드 장로교 전통을 형성한 스코틀란드 장로교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우리 개혁 신학의 선구자들일 뿐만 아니라 그 신학에 근거한 삶의 모든 영역에서의 활동에서도 모범을 보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화란 개혁파 성도들이나 스코틀란드 장로교인들이 항상 제대로 해 온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말씀과 개혁신학의 가르침에 충실한 때가 있었고, 성경과 개혁신학의 가르침에 충실하지 못한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성경과 개혁신학의 가르침에 충실한 때의 이 전통 속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정치적 영역에서도 하나님 백성 역할을 제대로 해 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어떤 때에 제대로 해 왔으며 어떤 때에 제대로 하지 못했는지 그 요인들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살피는 것은 역사가들에게 주어진 과제이고, 그 분들의 그 사역으로 우리들은 많은 것을 배우면서 우리가 해야 할 바를 가르침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 우리들은 성경과 개혁신학적 가르침에 의하면 가장 이상적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에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 원리는 교회 공동체에서 삶의 영역 전반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를 잘 가르침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정치 영역을 비롯한 삶의 영역 전반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수행해야 할 삶의 원칙을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그 원리가 마음이 새겨지지 않으면 그리스도인들도 구체적인 삶의 영역의 문제에 대해서 각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가르친 기독교적이고 기독교 세계관적인 삶의 원칙을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교회 공동체는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구속에 근거한 감사에서의 헌신하는 삶이 어떻게 나타나야 하며, 그런 삶의 원리를 반대하는 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실망하지 않고 끝까지 성경의 가르침을 실현 할 수 있을 지를 교회 공동체는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구속 받은 성도의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교회 공동체 교육의 근본적 사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가 이런 하나님 나라 백성을 형성 시키는 교육 이외의 직접적인 정치적 표현을 할 수 있을 때는 너무나도 심각하게 성경의 원리에 어긋나는 것을 온 세상에 강요하며 교회에 강요하는 정부 정책이 있을 때일 것입니다. 신사 참배를 요구하던 일본 제국주의 정책 같은 것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되겠지요. 그럴 때는 교회 공동체가 교회 공동체의 이름으로라도 그런 정책이 옳지 않다고 선언하고 그에 따른 불이익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배당 폐쇄, 따라서 한 동안 그 곳에서는 예배할 수 없음, 신체적 구금, 고문, 사형 등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교회가 공동체적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강하게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난다는 것을 천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항상 교회 공동체가 교회의 의견을 천명하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 교회 공동체가 마치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하기 위한 이익 단체와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이기에 주의해야 합니다. 특히 작금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인상이 너무 크게 주어지고 있기에 주의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이 세상의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교회의 이름을 내걸고 어떤 것을 주장하거나 어떤 것을 반대하는 등의 일을 하는 집단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사 참배 주장에 대해서는 교회가 공식적으로 반대했었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한일 합방에 대해서 교회가 그러해야 한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국가적으로 보면 한일합방이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해서 행한 더 큰 죄악입니다. 그것 때문에 신사참배 요구도 주어진 것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큰 악이 나타날 때마다 교회가 공식적인 입장을 천명한다는 것은 주께서 교회 공동체를 세우신 의도를 오해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가 모든 문제에 대해서 우리들의 의견을 일일이 낸다는 것은 교회의 존재 의미를 오해하도록 하는 것이 되겠기에 주의해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 공동체가 어떤 정권이나 정치가를 지지하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후에 말하지만 그리스도인인 개인은 그렇게 할 수 있고, 또 그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가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교회 공동체는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기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사참배나 그와 같은 것에 해당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명백히 어긋나는 것에 대해서만 교회 공동체가 공식적인 의견을 표명하고, 주로는 성도들의 하나님 나라 백성 의식을 함양하는 교육에 힘써야 합니다.

     

         둘째로,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잘 교육받은 성도들은 자신이 속한 삶의 영역에서 일단 일반 시민으로서의 활동에 열심이어야 합니다. 이런 영역에서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는 기독교적인 어떤 단체를 만들어 활동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근본적으로 다종교 문화적인 사회 속에서는) 이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과 같이 다양한 의견들 가운데서 우리들의  활동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속에서 건전한 시민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바른 방향,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가장 덜 악한 것(less evil)을 선택해 가도록 하는 일에 힘을 쓰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들로서는 교회 공동체에서 가르침 받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가지고 판단해서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마는 믿지 않는 이 세상에 그 의견을 제시할 때는 공공선 개념이나 더 나은 것을 선택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활동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일에 힘쓰지만 이것에 목숨을 걸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정치적 발전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관심 없이 있다는 것은 아니고 그 누구보다도 바른 시민으로서의 활동에 힘쓰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들 가운데서 정치적 영역에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분들은 삶 전체를 다 해서 정치적인 전문가로 나서야 합니다. 화란의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 10. 29–1920. 11. 8)나 영국의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 1759. 8. 24 – 1833. 7. 29)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되겠지요. 그들의 정치 활동의 내용을 살피면 이 세상 속에서 정치가로 활동하면서 명백한 기독교적 가치가 분명히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다소간 기독교적인 색채가 있는 사회 속에서 살았기에 그럴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일면의 진리가 있지만 또 구체적으로 보면 우리가 무책임하기 위해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도 점점 세속적이 되어 가는 사회 속에서 애를 써서 기독교적 가치를 기독교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제시하고 실현 하려고 노력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그런 정치인들이 드문 것을 아쉬워합니다. 우리들의 교회 공동체에서 정치적 영역에로 부름 받은 이들이 많이 나오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실력 없음을 입증해 주는 것입니다. 물론 국회의원들과 정치 지도자들의 종교 조사를 하면 “종교 없음” 다음으로 나오는 가장 많은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윌버포스나 카이퍼 같은 진정한 기독교 정치인은 아직 잘 발견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이들이 나와서 믿지 않는 분들조차도 그 인격이나 살아 온 행적이나, 특히 정책으로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할 때나 이 분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날이 속히 오기를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정치를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며 정치에 참여할지 말지를 고민 하는 사람일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리합니다. 적어도 우리의 동기와 의도에 있어서는 그러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치를 위해 순교하거나 정치적인 아젠다를 위해 죽을 정도가 되지는 않습니다. 가장 적극적이면서도 우리들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비교할 때 정치적 아젠다를 비롯한 모든 것을 상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야말로 절대적인 것(하나님, 하나님의 뜻, 성경)과는 절대적인 관계를 그리고 상대적인 것과는 상대적인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상대적인 정치적인 영역에서도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2012년 11월 14일


    다가오는 한국의 대선에서 가장 덜 악한 것을 제대로 선택할 수 있는 지혜를

    주께서 이 땅의 모든 백성들에게 일반 은총으로 주시기를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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