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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공주의를 넘어서는 교회
    우리사회와 기독교 2012. 6. 4. 14:22

    신앙세계 편집부의 부탁으로 <신앙세계> 2012년 6월호에 기고한 글을 소개합니다. 여러분들이 <신앙 세계>을 읽고, 그 안에 실린 이 글을 읽으면서 유익을 얻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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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락한 이 세상은 근본적으로 성공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세상 안에는 죽음 지향적인 특성도 있어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포자기한 상태로 살거나 아무런 의미도 없이 살아 나간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성공을 지향하면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 중에 일부가 소위 성공한 삶을 살며 상당수의 사람들은 그런 것을 부러워하면서 살아간다. 이 와 같은 것은 타락한 세상에서 항상 경험해 온 사실이다. 그것이 이 타락한 세상의 특성이라고 할 정도이다. 물론 이 세상에서 그런 것을 경원시하면서 살아가는 불교나 도교의 가르침이 있기는 하다. 일체의 인연을 끊고서 일종의 자아 완성을 향해 나아가도록 부추키는 사상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는 이런 여러 조류들과 다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즉, 기독교는 이 세상에서 성공을 지향해 가는 것도 아니며, 이 세상에 아무 의미도 두지 않으면서 소극적으로만 사는 것도 아니고, 또 이 세상과의 관련성을 일체 단절하고 자신의 완성만을 향해 노력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물론 기독교가 타락하면 이런 세 가지 중의 하나의 성형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비정상적인 기독교의 모습일 뿐 진정한 기독교는 이 세 가지 조류 중 그 어떤 것도 따라 가지 않는 것이고, 그것들과는 다른 특성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성공주의 기독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일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이 세 가지 성향 중에서 한 방향을 기독교의 모습인 양 제시하는 일들이 많다. 그 중에 이번에는 소위 성공주의를 지향하는 모습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이를 이른바 “성공주의 기독교”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정상적인 기독교의 모습이 아니다. 타락한 기독교나 비정상적인 기독교, 잘못된 기독교의 모습의 하나인 것이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자신들의 건강과 행복과 성공을 지향해 가는 것이다. 이것은 이 세상의 성공을 기대하는 이들이 지향하여 나가는 바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구속과 더불어 우리들에게 모든 좋은 것을 얻는 수단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런 사상과 이를 지향하는 교회 공동체에서는 예배와 기도와 금식과 헌신과 헌상 모든 것이 감사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주로는 앞으로 더욱 큰 성공과 행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대개 이런 공동체 안에서는 구성원들이 매우 열심이게 되고, 그들 중에 소위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가 중시(重視)되며, 그런 이들이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것이 잘못된 기독교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가장 바람직한 기독교의 모습이라고 여겨진다. 이런 상황 속에 잇는 사람들은 이것이 병든 모습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것을 지향하지 않는 이들이 병든 이들로 여겨지며, 그들이 하나님께 더 열심히 기도하고 더 헌신하여서 그 병든 상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공주의 기독교 안에 상당수의 성도들은 사실 세상적으로 성공하지도 못하고, 세상적인 복을 그렇게 많이 누리지도 못하면서 그것이 자신들의 열심 없음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피해 의식 가운데서 살게 되는 일이 많다. 이와 같이 성공주의 기독교는 구조적으로 성공한 소수와 그렇지 못한 다수라는 구성적 형태를 지니게 된다. 이와 같은 것은 성공주의 기독교에서 반드시 따라 나오는 현상인 것이다.

           교회 공동체들도 일부 소위 성장한 교회와 그렇지 않은 교회라는 상당히 이분법적 구조를 드러내게 된다. 성공주의 기독교는 개인들과 공동체들의 양극화를 낳는 것이다. 이 세상의 양극화와 비슷한 현상이 성공주의 기독교 주변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은 구조적으로 거의 필연적인 것이다. 성공주의 기독교가 지향하는 모든 이들이 다 성공 하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 마디로, 이 세상이 회개해야 하듯이 잘못된 기독교도 항상 회개해서 기독교의 본래적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공주의 기독교를 유지 하려고 할 때 모든 형태의 잘못만 양산(量産)될 뿐 문제의 진정한 해결책은 없다. “너희 중에서는 그렇지 아니하니”(마 20:26)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원칙 천명에 따라서 우리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십자가의 이름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 되고, 우리가 이 세상적 의미로 복 받고, 우리가 잘 되고, 우리가 성공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 사실 그와 같이 하려는 자들은 섬기는 자가 되고, 종이 된다는 그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기독교는 이 세상에서 크게 되고, 남들을 지배 하는 자가 되고자 하는 그 세상적인 마음을 십자가의 빛에서 버려 버리는 곳에 잇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자신으로 그 모범으로 제시한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주님은 죽기까지 다른 이들을 섬기셨는데, 어찌 우리가 남들 위에 군림하기를 추구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일차적으로 우리들의 죄를 해결하고 죄의 세력해서 우리들을 구속하기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우리에게 섬김의 가장 정순한 표준으로 서 있다. 천주 교회의 교황이나 다른 어떤 종교지도자들처럼 발을 씼어 주는 의식적인 행사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정 섬기는 사람으로 이 세상 속에 잇을 때 우리들의 기독교적 존재 방식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을 본 받아서 남들을 섬긴 모범을 보이신 분들의 모법이 많이 있다. 여수 애양원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그들의 환처를 입으로 빨아 중 정도로 참된 사람으로 돌보며 그들을 목회하시며 급기야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을 양자로 삼으신 사랑의 모법인 손양원 목사님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애양원이 만들어 질 수 있도록 자신을 다 내어준 남장로교 간호 선교사로 이 땅에 와서 그야말로 조선 사람들을 섬긴 서서평(Elizabeth J. Shepping, 1880-1934) 선교사도 있다. (서서평 선교사에 대해서 자세히 보려면 양창삼, <<조선을 섬긴 행복: 서서평의 사랑과 인생>> [서울: Serving the People, 2012]을 보라). 이런 구체적인 역사적인 예들을 앞에 두고 우리들은 그 역사에 눈감지 않는 이상 성공주의 기독교에로 나아 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 주변에 성공주의 기독교가 난무 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역사에도 맹목(盲目)이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 보여주는 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상황에서 우리에게 요구 되는 것은 성경의 예수님의 가르침에로 되돌아가서 그 말씀 앞에서 진정 회개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과 진정한 교회가 못되었다고 겸허힌 고백하면서, 주께서 우리를 진정한 그리그도인으로 만들어 주셔서 이런 귀한 예들을 따라 가게 해 주시기를 위해 기도하면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씩 주께서 인도하는 대로 걸어가야 할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의 구속에 근거하여 주어지는 오직 은혜에만(sola gratia) 의존하는 오직 신앙(sola fide)의 사람만이 성공주의 기독교라는 병든 기독교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진정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soli Deo gloria) 살아 갈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성경만(sola scriptura)을 판단의 근거로 하는 사람들은 그런 길로 갈 수 밖에 없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고 주님께로 간 서서평 선교사 묘지 부근(광주 선교사 묘역)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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