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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슬람 채권(스쿠크)법에 대한 논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사회와 기독교 2011. 5. 3. 00:25

    <합신은 말한다>에 실렸던 글을 다시 여기 소개합니다. 같이 깊이 있게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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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의 여러 논쟁 가운데 요즈음 이슬람 채권법에 대한 논쟁이 그 하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이 문제에 대해서 논의할 때에 우리들은 이슬람 채권법 자체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하고, 또한 이 법에 대한 기독교 인사들의 태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 차례 차례로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법은 돈을 꾸어 줄 때에 이자를 받지 말라는 말씀을 그대로 준수하는 듯이 보이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슬람교도(므슬림)들이 기독교인들보다 더 나은 것이 아닌가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구체적으로 시행하는 방식을 잘 살펴보면 여기에도 예수님 당시 바리새주의와 비슷하게 율법을 지키면서 편법을 만들어 가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과 코란에 나오는 형제에게 돈을 빌려 줄 때 이자를 받지 말라는 것에 충실해 보려고 하는 것은 좋으나, 그렇게 하면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채권이 실질적으로 팔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자는 주지 않는 대신에 그 돈으로 사업을 해서 그 수익금으로 배당금을 주려고 한다는 것은 사실 이자를 지급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내기 때문입니다. 이슬람 자본을 들여오는 다른 나라와 같이 우리나라에서도 이것을 적용하려면 사업한 것에 대한 여러 가지 세금을 면제해 주어야 하겠기에 다른 사업에 대한 세금과의 형평성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형평성의 문제를 차치하고 순전히 경제적인 문제만을 생각하는 분들은 그것이 어떻게 되든 유동성이 넘치는 이슬람 자본을 사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이용하려고 할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해서 이슬람 자본이 우리 사회 속에 들어 올 때 이와 합하여 외자가 우리나라에 너무 많이 들어옴으로 인하여 장기적으로 볼 때 경제적인 면에서 문제가 있을 것은 아닌지, 특히 이슬람 자본의 유입과 함께 이슬람의 발언권과 권세가 우리 사회에 영향을 더 마쳐서 우리 사회에 대한 이슬람 선교의 유용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될 것이 아닌지에 대해서 우려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입장에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 사회경제적인 면에서, 그리고 선교적인 면에서 우려하는 것은 있을 수 있고, 그런 우려를 잘 표현해 가는 것을 더 심화시켜 가는 것은 좋은 것일 것입니다. 특히 경제 분야의 전문가들이, 또는 선교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런 일을 시도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경제적 문제 해결을 위해 이런 법안이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상황에서 일부 기독교 인사들이 기독교의 영향력을 염두에 두면서 이런 기독교적 세력에 근거하여 이 법안에 반대하는 정치적 발언으로 비칠 수 있는 발언을 하였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 사회는 이런 발언 앞에서 기독교가 자신들의 힘을 드러내며 그 힘에 의존하여 정치와 경제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는 것, 더구나 이런 발언 이후에 정치권이 이 법을 일단 유보하기로 하였다는 결과에 대해서 이 모든 과정에 대한 매우 강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이런 반응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반응입니다. 입장을 바꾸어서 이 세상의 다른 종교인들이 그 종교가 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염두에 두면서 어떤 발언을 하여 정치와 경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려고 할 때에 우리가 마음 속으로 과연 어떻게 반응하게 되는 지를 생각해 보면 좋을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이 우리들의 생각을 관련 있는 분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철저히 개인의 자격으로 자신의 견해를 말해야지, 그것이 기독교계의 의견인 양하면 안 되고, 더구나 기독교의 세력을 과시하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개개의 그리스도인들이 각기 소명에 따라 일하는 곳에서 신앙과 양심에 따라서 성실하게 판단하고 직무를 처리하는 방식으로 이런 문제를 처리해 가야 합니다.

     

    이 사태와 관련된 근본적 문제는 기독교가 그 세력을 과시하는 듯이 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보인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의 사회 변혁론의 하나인 헤게모니 이론을 정당화하는 것이지, 성경과 예수님의 사회 변혁의 방식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겸손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그 아름다움을 온 세상에서 보여서 도덕적 감화의 방식으로 이 세상을 변혁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인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우리들의 힘을 과시하고 사람들로 우리들의 힘에 위압감을 느끼도록 하는 그런 삶의 태도를 드러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기독교는 우리의 힘으로 이 세상을 변혁시켜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의 반응이 계속되면 이 세상이 하나님에 대항하여 고악한 법을 만들어 낼 때도 교회가 하는 말을 이 세상이 전혀 듣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말을 아껴야만 합니다. 그래야 필요한 때에 우리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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