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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 학문의 의의
    우리사회와 기독교 2003. 6. 7. 01:43
    기독교 학문의 의의



    달구벌 기독 학술연구회의 진전과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서 늘 감사하게 여기는 이의 한사람으로서 이 기회를 빌어서 우리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 발전시키고자 하는 기독교 학문(Christian Scholarship)이란 과연 어떤 의의를 지니며, 마땅히 어떤 것으로 나타나야만 하는 지를 간단히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는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한 본격적 논의를 위해 의견을 모으기 위한 시론(試論)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생각 있는 기독교인과 그리스도인인 학자들에게 있어서 기독교 학문 연구란 매우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하든지 (1)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그리고 (2) 기독교적 관점에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인 실업가가 항상 신전 의식(神前意識)을 가지고 기독교적 관점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당연하고 마땅한 일이듯이, 기독교인인 학자는 자신의 학문 할동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해야만 한다. 그러나 문제는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기업 활동이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적 학문이라는 것도 쉽지 않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생겨나는 일로 우리들이 쉬운 방식을 취해서 실질적으로는 기독교적 학문 연구가 아닌 것을 기독교 학문 연구의 이름으로 제시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잘못된 예들에 대한 고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진정한 기독교 학문 연구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제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고 여겨진다. 적어도 그런 잘못을 하면서 우리가 기독교적 학문 활동을 한다고 하지는 않을 수 있으니 말이다.

    1. 기독교 학문이라고 하기 어려운 것들

    (1) 기독교와 일반 학문을 적당히 조합시킨 것, 통합되지 않은 것들

    기독교와 일반적 학문이 그저 썩여 있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기독교 자체로도 무익하고 학문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능력이 없어서도 그렇고, 시간이 없어서도 그렇지만 그저 일반 학문적인 것과 나란히, 또는 그것과 섞여서 기독교적인 것이 나오는 것은 잘못하면 혼합주의를 낳고, 최소한 질이 낮은 학문을 양산할 위험이 있다.

    (2) 일반 학문에 기독교적인 코팅을 한 것

    좀더 심각하며 위험한 것은 실제로는 일반 학문적인 내용이 적당히 기독교적 코팅으로 가지고 제시되는 것이다. 그래서 겉으로는 기독교 학문이지만 실질적으로 분석해 보면 그저 일반 학문이 나타나는 것이다.

    (3) 잘못된 의미의 호교적(好敎的)인 학문

    학문의 결과가 기독교를 옹호하는 데 사용되면 그것이 기독교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좋은 기독교 학문은 기독교에 대한 좋은 변증이 된다. 그러나 기독교 학문 자체는 변증학이 아니므로 지나치게 호교적으로만 생각할 이유는 없다. 마치 호교 문학이 좋은 기독교 문학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4) 어떤 특정한 주제를 다른 것만이 기독교 학문이라는 오해

    기독교 학문이 다루는 어떤 특정한 주제가 있어서 그런 주제를 다루면 기독교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오해가 있을 수 잇다. 종교 개혁을 다루면서도 그것을 순전히 세속적으로만 다룬다면 기독교 학문이라고 할 수 있듯이, 어떤 주제나 연구 내용의 제한으로부터 기독교 학문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5) '자연과 은총'의 구조를 지닌 기독교 학문

    이는 좀더 성숙한 형태의 잘못된 이해로 이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연구하며 그것에 있어서는 모든 이들과 같은 결론에 이를 수는 있으나, 그들과 우리 자신이 더 온전하고자 하면 그 이성의 영역을 넘는 영역까지도 인정해야 한다고 새로운 영역을 제시하는 형태를 기독교 학문으로 말할 수도 없다. 이런 생각의 고전적인 형태가 천주교적 이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것들이 모두 진정한 의미에서 기독교 학문이 아니라면 기독교 학문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이것이 우리의 주된 관심사이다.

    2. 기독교 학문

    기독교 학문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기본적으로 말하자면 기독교 학문이란 그리스도인이 (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2) 기독교 신앙과 기독교적 관점에서, (3) 하나님과 피조 세계, 그리고 그 관계를 각각의 학문의 영역에 따라 연구하는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나타난 중요 요소들을 중심으로 하나 하나 생각해 보기로 하자.

    먼저 기독교 학문은 그리스도인과 기독교적 학문 공동체가 행하는 일이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이가 기독교적인 주제를 다룰 때 그로부터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고 그 학자를 존중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기독교 학문은 아닌 것이다. 왜 그런지는 이하의 논의에서 분명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교 학문이란 결국,

    (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학문적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하는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그런데 기독교인인 학자는 자신의 다른 삶의 영역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하지만, 특히 학문 활동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은사와 소명을 받은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그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작업의 내용이 학문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기독교 학문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따라서 가장 중요한, 그러나 실제 학문 활동에서 가장 무시되기 쉬운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2) 기독교 학문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하는 학문 활동이다.

    기독교 학문의 또 하나의 본질적인 요소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이다. 비기독교적 관점에서 학문하거나 신앙이 관여하지 않는 중립적 관점에서 학문하는 것은 기독교 학문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칼 마르크스의 유물 변증법을 가지고 학문하는 것이 기독교 학문이 아니듯이, 맑스 웨버가 말한 가치 중립성을 가지고 학문을 하는 것도 기독교 학문 연구라고 할 수는 없다. 기독교적 관점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 학문 활동을 기독교적이라고 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는 "기독교 학문"이라는 말 중에서 "기독교"라는 말을 좀더 강조하여 말하는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온 세상이나 각 학문 분과의 내용을 바라보는 독특한 "기독교적 관점"을 강조하는 말이며, 또한 그 학문의 전제와 방법론이 기독교적 내용과 모순되거나 갈등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혹시 과정 가운데서 우리의 눈에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있을 수도 있으나 항상 우리의 유한성이 본래적인 것을 해하지 아니하도록 우리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만 한다.

    (3) 각 분과의 성격에 부합한 학문 활동. (특별 계시의 빛에서 해석된 일반 계시에 충실한 학문 활동)

    그러나 기독교 학문이 모두 신학은 아니다. 그러므로 각각의 영역에 대한 연구는 그 학문 연구의 대상이 되는 것들 (그 모든 대상들을 합하면 "특별 계시의 빛에서 해석된 일반 계시"가 된다)의 성격에 따라 학문적 작업을 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 각기 다른 영역에 다른 성격을 부여해 주셨으면 그 대상이 되는 영역의 대상에 부합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하는 문학적 연구와 자연 과학적 연구가 그 목적과 궁극적 방향에 있어서는 일치하지만 모든 면에서 다 같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각 학문 영역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각각의 학문이 담당하는 영역이 나뉘어 지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학문이 진정하면서 이런 분과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말이다.

    그러나 일반 학문에서의 분과화, 파편화와는 달리 기독교 학문 연구에서는 본질적으로 그 모든 학문을 하나도 묶는 요소들이 있으니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에서 보는 모든 세상(일반 계시)을 그 본 자료로 하고 있으며, 그것은 해석하는 틀이 근본적으로 같다는 데서 오는 것이다. 물론 같은 성경을 가지고도 해석하는 방법이 달라서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성경을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이들 사이에는 의견의 차이와 해석의 차이는 있어도 그것이 그들 사이의 본질적인 관계를 해치는 것이 아니듯이,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이 각기 다른 학문 분과에서 일반 계시를 연구할 때에도 그 시각과 관점의 차이가 근본적인 대립을 낳게 하여 상대주의에로 우리를 인도하게 할 정도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그런 것에로 우리를 인도하는 사상이나 그런 분위기가 있다면 그것에 대해서 우리는 좀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이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바로 신학이라고 여겨진다. 모두가 성경의 가르침의 근거해서 하나가 되는 것이 옳다는 미명하에 중세 때처럼 신학이 모든 학문의 여왕으로 군림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중세 때 그리한 전과가 있으므로 신학은 이런 점에서 좀더 겸손해야 한다. 신학은 과연 모든 학문과 좀더 긴밀히 연관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때 신학은 다른 학문 위에서 주장하는 자세가 아니라 다른 학문 분과를 존중하며 섬기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각각의 학문 분과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진리로 통일되어 있지만, 그래도 각각이 하나님께 그 나름의 책임을 감당하는 독자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학문 분과들도 의식적으로 하나님 말씀의 통제 아래서 학문을 하려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다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이, 길 잃은 양 같이 어디로 가서 헤매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의 학문사(學問史), 철학사, 과학사가 잘 실증해 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적어도 기독교적으로 학문을 한다고 하는 이들은 본격적인 신학자는 아니어도 성경에 대해 바른 이해를 가지고 성경에 충실한, 아더 홈즈(Arthur Holmes)가 제안한 바 전문적이지는 않으나 세계관적 신학을 하는 이들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3. 마치는 말

    부디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기독교적 관점을 가지고, 우리에게 주어진 학문 분과를 잘 연구해 갈 수 있는 이들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그것 자체가 너무나도 많은 과제를 우리에게 부여해 주고 있다. 그런 일을 해 나가는 우리의 사역을 주께서 의미 있게 사용하셔서 우리의 연구 결과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이 세상에 부여하신 의미가 잘 드러나는 일이 이루어 질 수 있기를 감히 바래 본다.

    배경 사상 이해를 위한 홈페이지 소개:

    http://my.netiancom/~wmin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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