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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이외의 예배나 기도회에 대한 여러 규정들신학이야기 2022. 5. 24. 18:28
<월간 고신 생명나무> (2022년 6월): 17-21에 실린 글을 여기에도 올려서 더 많은 독자들이 보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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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공동체가 하는 여러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의 하나가 예배다.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매주 기념하는 주일에 온 교회가 다 같이 모여 경배하는 주일 예배를 중심으로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해서 그리고 성령님 안에서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 지를 전제로 하면서, 이런 주일 아침 예배 이외의 모임들에 대해서 <도르트 교회 질서>는 여러 가지 규정을 하고 있다. 이들을 하나하나 살피고 점검해 보기로 하자.
이런 작업을 할 때에 <도르트 교회질서>를 비롯해서 당시의 많은 글들에서는 예배를 “설교”(sermon)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는 것을 유념하면서 이를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주일 오후 예배를 주일 오후 설교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개신교, 특히 개혁파의 예배가 설교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에 대한 의식이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설교만을 예배로 생각하지 않도록 다들 주의하면서 생각하여야 한다. 또한 당대 교회들이 교회 공동체가 다 같이 모여서 하는 일부 모임에 대해서 “기도”(Prayer)라고 한 것도 예배와 구별되는 기도회라고 할 것인지, 아니면 그것도 예배의 하나라고 할 것인지도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주일 오후 예배
주일 오후 예배에 대해서는 <도르트 교회질서> 68조가 규정하고 있고, 이것은 매우 유명한 규정이다. 도르트 회의에서 주로 주일 오후 예배 시간에 요리문답, 즉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매주 강해하여 일념에 한 번씩 교리의 전체를 다 다루도록 했다는 것은 이제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를 규정한 것이 <도르트 교회질서> 68조이다. 이 중요한 조문을 그대로 인용해 보기로 한다.
목사님들은 어디서나 주일에, 일반적으로는 주일 오후 예배에서 현재 네덜란드 교회들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요리문답에 포괄되어 있는 기독교 교리의 요약을 간단히 설명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 목적으로 위해 만들어진 요리문답 자체의 구별에 따라서 매년 그 내용이 온전히 다 가르쳐지도록 해야 한다. (<도르트 교회질서>, 68조).
이런 규정은 네덜란드 교회 공동체들 전체가 우리가 믿고 있는 기독교 교리를 잘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따라서 이는 보편적 규정으로 제시되어 있다. 목사님들은 어디서나 그리해야 한다고 하여, 전국의 교회들 전체가 다 같이 요리문답을 잘 공부하여 그것이 요약하는 대로 성경의 내용을 철저히 알고, 그것대로 믿고 살도록 하려는 것이 이 규정의 목적이었다. 그러므로 각기 다른 교회들이 각기 다른 것을 믿는 자신들 마음대로 신앙 생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네덜란드 교회들에 속한 성도들은 전국 어디에서 신앙생활을 하든지 성경에 근거해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잘 요약하고 있는 내용을 다 믿도록 한 것이다. 교회가 다 같은 것을 믿으며 다 같은 방향을 나간다고 하는 것을 담보할 수 있는 좋은 조치였다. 우리는 성경을 믿는 교회인데, 과연 성경을 어떻게 생각하고 믿는 지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통해 규정하고 그것을 잘 가르치도록 한 것이다.
주일 이외에 지킬 날들
종교개혁교회들은 천주교에서 지키던 모든 성인의 날들을 다 폐지하고 오직 주일만을 지키는 교회로 유명했다. 그런데 <도르트 교회질서> 67조는 “주일 이외에 성탄절과 부활절과 성령강림절을 다음 날과 함께 지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네덜란드의 대부분의 도시와 지역에서 그리스도의 할례일과 승천일도 지키고 있다고 하면서 “목사님들은 이것이 지켜지지 않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정부와 협력하여 다른 교회들이 하는 대로 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 가장 낯선 규정이라고 할 것이다.
저녁 기도회들(the Evening Prayer Meetings)
또한 당시 네덜란드 교회들은 아마도 이전에 천주교회에서 하던 것과 같이, 그러나 그 내용을 바꾸어서 매일 저녁 기도회를 했던 것 같다. 이에 대해서 “저녁 기도회들이 많은 곳에서 유익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the Evening Prayer Meetings are found profitable in many places)고 하면서, 모든 교회는 교회의 양육에 가장 유익이 되는 방식으로 이를 시행하도록 각 교회 공동체에게 자유를 부여하되, 그들이 이를 계속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여 없애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노회의 판단(과 개혁파 교회를 애호하는 정부의 판단)이 없이 그러하지는 말라”고 권한다(64조). 각 교회가 알아서 판단할 것이나 교회가 각기 알아서 하기 보다는 노회 안에서 같이 의논하여 시행할 것을 규정한 것이다. 이는 노회 안의 모든 교회들이 하나의 교회라는 의식을 많이 반영한 조치라고 해야 한다.
장례 예배들(Funeral Sermons)
종교개혁기에 그 바로 이후 시기의 큰 특장의 하나는 장례와 관련한 모든 의식을 다 없앤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이전 천주교회의 의식들이 너무 많았고 천주교회에서 믿던 대로 연옥에서 빨리 구하기를 위한 마음이 작용한 여러 미신을 빨리 일소(一掃)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래서 아무런 의식이 없이 바로 장례하도록 했었다. 종교개혁이 이루어진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미신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의식해서인지 <도르트 교회질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 동일하게 강력한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장례 예배들이 없는 곳에서는 이것들이 도입되지 말아야 하며, 이미 받아들여진 곳에서는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그것들을 없애기 위해 애써야 한다”(diligence shall be exercised to dispose of them by the most suitable means)고 규정하고 있다(65조).
처음부터 다양한 장례 예배를 가진 한국 교회는 이를 가장 당혹스러운 조항을 여길 수 있다. 종교개혁 당시에 왜 장례와 관련한 모든 의식을 배제했는지를 잘 이해하는 마음으로 이 일에 접근해야 한다. 종교개혁이후 100-150여년이 지난 후에도 일부에서는 이전 미신이 계속 작용하고 있고, 일부에서는 이제 그 모든 것이 없어졌으니 우리 나름의 장례 예배를 도입하고 있는 1719년 당시 네덜란드의 상황을 생각하면서 왜 이 분들이 장례 예배를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없애기를 원했는지를 잘 생각해야 한다.
금식과 기도회를 위한 날들(Public Days of Fasting and Prayer)
“전쟁이든지, 전염병이든지, 재난이든지, 교회들에 대한 심각한 박해나 다른 일반적으로 극심한 어려움이 발생한 때에 교회의 목회자들은 정부에 그들의 권위를 사용해서 금식과 기도회를 위한 날들을 정하여 구별할 것을 명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고 <도르트 교회질서> 제66조가 규정하고 있다. 이런 날들에 각 가정에서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이지만 이는 교회 공동체가 함께 모여서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서 규정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주일 이외에는 다른 날들을 잘 규정하지 않으려는 교회로서는 매우 예외적인 것이다. 이런 비상 시기에는 비상한 조치가 필요해서 전국의 교회가 다 같이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긴 것이다. 하나님을 의존하는 태도를 유념하고 그렇게 하나님을 의존하는 태도가 전체를 주관해야 한다.
한국 교회와 관련한 성찰
이런 규정들을 살피면서 우리는 교회의 규정은 항상 상황적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규정하고 법조문화하는 것이 과연 좋은 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세월이 조금 더 흐른 후에 웨스트민스터 회의에서 예배에 대한 규정을 왜 그저 “예배 모범”이라고 제시하였는지를 생각하면서, 모든 교회의 예배를 하나의 형식으로, 그것도 비성경적인 것이 포함된 형식으로 규제하려던 영국 교회의 기도서(the book of prayer) 전통에 대한 반발로 가장 성경적인 것을 제시하되 그것을 그저 “모범”으로 제시하여 각 교회가 알아서 판단하도록 한 예를 잘 유념해야 한다.
각 교회가 주일 오후 예배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간단히 설명하도록 한 것은 잘 한 것이나 그것을 꼭 매년 한 번씩 마쳐야 하는 것까지를 규정한 것이 과연 필요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한 번은 간단히 설명하여 1년에 한번 전체적으로 살핀 후에 수년 동안 하나하나 깊이 생각하여 몇 년에 걸쳐 살피고, 그 후에 또 한 번 개관하여 1년에 한 번 전체적으로 살피고 하는 다양한 방법에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것을 다 규정하는 것이 과연 좋은지, 또한 규정할 때 일종의 권고적으로 하는 것이 어떤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장례 예배 등에 대해서 당시의 정황을 살피면서 왜 그 때 강하게 다 폐지했는지에 대해서 동감적으로 생각하면서, 우리 시대의 교회들이 미신에 빠지지 않으면서 장례 예배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여러 절기들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또 다시 여러 절기를 언급하는 것 보다 이제 주일 이외 모든 것을 없애는 정신을 담아서 주일만을 구별하고 너무 교조적이지 않게 최소한의 절기를(성탄절, 부활절, 성령강림절, 혹 필요하면 감사절)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 경우에도 성탄절은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는지를 정확히 모른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그저 옛적부터 생각하던 성탄절에 우리 주님의 성육신 사실을 분명히 하고 기념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탄절에 예수님께서 태어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그리해야 할 것이다.
<도르트 교회질서>에서 저녁 기도회에 대해 언급한 바(64조)는 한국 교회의 새벽기도회와 연관해서 생각하면 여러 좋은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금식과 기도의 날들을 각 교회가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유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제는 교회를 옹호하는 정부가 없으므로 각 교단이 심사숙고해서 비상한 시기에 금식과 기도의 날을 구별하여 각 교회에서 모두 금식하며 주께 기도하며 오직 하나님께 의존함을 잘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것도 우리의 세력을 과시(誇示)하는 태도로 대규모 의식으로 하지 말고 선언된 날에 각 교회의 예배당에 그 교회, 즉 그 교회의 교우들이 함께 모여 간절히 기도하는 방식으로 하면 좋을 것이다. 코로나 펜데믹 상황이 과연 그리해야 할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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