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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적 종말론을 촉구하며
    신학이야기 2010. 3. 10. 16:59

    < 현대 종교>에 기고한 서평문을 미리 공개합니다.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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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우리시대의 종말론들의 문제점을 돌아보면서

             성경적 종말론을 촉구하며


    Sylvia Brown, Ends of Days (Dutton, 2008), 노혜숙 옮김,『종말론』(서울: 위즈덤하우스, 2010).


    다양한 종말 이해들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사실 쓸데없는 책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아래 서평에서 이 책이 하는 기여를 언급하기는 하겠지만 그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도 또 번역되어 우리말로 출판되었다는 것도 모든 시간과 종이와 잉크와 모든 자원의 낭비에 가까운 일이라고 여겨진다.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1위에 해당하는 책들의 저자로부터 이와 같은 책이 나왔다는 것은 사람들이 과연 어떤 문제에 관심 있어 하는 지를 잘 보여 주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도대체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이런 쓸데없는 일에 시간과 자원 쓰기를 얼마나 계속하려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더구나 이 책과 이 저자는 우리들을 성경의 가르침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므로 이는 낭비 일뿐만 아니라 위험하기도 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기여점이 있다는 그것은 어떤 것일까?


          1. 기여점


    첫째로, 다양한 종말에 대한 가르침들이 상당히 옳지 않은 것이며 도대체 믿을 만 하지 않다는 것을 잘 드러내어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의 기여 점의 하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야 달력을 나름대로 해석하고서 2012년에 종말이 온다고 하는 이야기든지, 문선명이 말하는 종말이해든지 이 세상에 제시된 다양한 종말 이해들이 상당히 믿을 수 없는 것이며 이런 이들이 말하는 “분명한 징후들은 유사 이래 계속해서 나타난” 것이라는 것을 이 책은 잘 보여 주고 있다(p. 6). 이것을 잘 보여 주는 것은 BC 2800년경 아시리아 서판에 나타나는 다음 같은 말의 인용이다: “이 세상의 운명은 얼마 전부터 쇠하고 있다. 세상의 종말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는 징후들이 있다.”(13쪽에서 재인용)

          이와 같이 실비아 브라운은 시대 시대마다 종말이 다가 오고 있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의 예를 잘 들고 있다. 잉카와 마야 문명, 아즈텍 문명의 종말 예언으로부터 시작해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종말이해, 여러 종교들의 종말이해를 말한다. 특히 1000년 전후한 “첫 번째 천년 히스테리”, 몰몬교의 창시자인 조셉 스미뜨(Joseph Smith)의 자신이 85세 되는 1890년 인자가 올 것이라는 예언과 그가 이때로부터 50년 전에 죽었다는 사실(p. 18), 여호와 증인의 러쎌(Charles Taze Russell)의 BC 607년을 기점으로 하여 이에 1520일을 더한 1914년 10월에 종말이 올 것이라는 예언, 이 그해가 지닌 후에 1915년, 1918년으로 옮겼다가 1916년 그의 사후에 그 의미를 재해석한 여호와의 증인들, 특히 J. E. Rutherford에 의한 1925년 예언과 그 이후 1932년, 1966년, 1975년, 그리고 시편 90편을 나름대로 반영하여 1994년으로 고치고도 지금까지 600만명이 여호와의 증인으로 있는 일(pp. 120-22), 러사아의 마지막 황제 일가를 좌지우지 했던 그리고리 라스푸틴(Grigori Rasputin)의 예언(pp. 155-62), 유명한 노스트라다무스(Michel de Nostredame)의 애매한 예언시(豫言詩)와 그에 대한 어떤 이들의 해석에 의하면 AD 3797에 세상이 끝난다는 예언 해석(p. 174) 등과 함께 천국의 문, 인민사원, 다윗파, 통일교, 제프리 런그렌, 챨스 맨슨을 따르던 패밀리 등이 얼마나 이상한 예언을 하고 사람을 현혹하고 있는지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이런 종말 문제와 관련해서 어떤 이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인지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이 책의 큰 기여로 언급할 만하다. 이는 우리가 관심 있는 이단 사이비 운동의 특성으로 그대로 언급해도 좋을 만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실비아 브라운이 말하는 사이비 교주들의 다음 같은 특성들을 잘 생각해 보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 자신이 주장하는 교리만이 유일한 진리이며 전통적 종교들은 모순과 위선으로 가득차 있다고 주장한다.

    * 증명이 불가능한 주장을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은 일상적으로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한 명령과 통찰을 받는다고 말한다. 자신이 환생한 메시아나 예언가라거나, 하느님이 자신에게 특별한 임무를 맡겼다거나, 무엇보다 종말이 다가 왓을 때 자신만이 충실한 신자들을 안전하게 하느님 품으로 인도할 수 있으며 죄를 지은 불신자들을 이 세상에서 소멸한다고 말한다.

    * 믿음의 증거로 신자들로부터 십일조나 세속적 재산과 소유물의 증여를 강요한다.

    * 보통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고, 빈민구제시설에서 봉사하며, 의복을 수집해서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는 등의 인도주의적 활동을 포함한 숭고하고 거부할 수 없는 목표들을 제시한다. (신자들은 나중에야 글들의 모든 노력이 바깥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부의 목적을 위한 것임을 알게 된다.)

    * 가능하면 신속하게 신자들을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격리시키고 공동 생활하는 상황으로 몰고 간다. 그러면서 일주일 내내 하루 24시간을 하느님께 온통 바쳐야만 세속의 죄를 씻고 순수하고 신성하게 정신 수양을 하며 세상의 종말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 일단 신자들을 포섭해서 자신의 감독 하에 두면 서서히 그리고 확실하게 그들의 삶을 시시콜콜 간섭하기 시작한다..... 질문이나 반론은 허락하지 않는다.

    * 단조롭고 규칙적인 생활을 강요하면서 ‘우리 대(對) 그들’의 대립을 강화한다.(pp. 183f.)


    또 이와 함께 실비아 브라운은 다음 같은 이들은 거짓말 하는 것임을 잘 언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 자신이 누구보다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에 있다고 주장하는 예언가/메시아... (2)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예언가... (3) 신적 계획을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예언가 ... (4) 우리 자신이나 다른 생명체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는 예언가 ... (5) 자신의 말에 절대 오류가 없다고 주장하는 예언가 ... (6)자신을 비난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악마이고 하느님이 그들에게 영원한 저주를 내릴 것이라고 주장하는 예언가... (6)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지원하고 진실하게 대하는 사람들과 멀어지게 만들고 개인의 경제적 안정을 위협하는 예언가... (7) 자신보다 우리를 아끼고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고 주장하는 예언가 ... (8) 자신은 하느님의 법과 사회의 법, 그리고 인과응보로부터 자유롭다고 주장하는 예언가 ... (9) 두려움과 학대와 위협을 이용하는 예언가 ... (10) 종말이 다가 올 때 자신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예언가/메시아”(p. 185).

       셋째로, 실비아 브라운은 앞으로 환경오염의 결과로 우리가 지구를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자세히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환경 문제에 관심을 지닌 사람들이 누구나 살펴보아야 할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녀가 제시하는 에너지 절약과 환경 보존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재생지를 사용한다.

    *여름에 냉방 온도를 1도 높이고 겨울에는 난방 온도를 1도 낮추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년에 약 2,000파운드 줄일 수 있다.

    * 식기 세척기가 완전히 채워진 다음에 사용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년에 약 100파운드 줄일 수 있다.

    * 집에서 사용하는 전구 3개를 골라서 절전 형광등으로 교체하며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년에 약 300파운드 줄일 수 있다.

    * 온수 히터를 낮추어 잡고 절연처리를 하면 사용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년에 약 1,550파운드 줄일 수 있다.

    * 샤워하는 시간을 2-3분 줄이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년에 약 350파운드 줄일 수 있다.

    * 매달 타이어를 점검해서 바람을 충분히 넣으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년에 약 250파운드 줄일 수 있다.

    * 난방기와 냉방기를 필터를 필요한 만큼 자주 교환하거나 청소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년에 약 350파운드 줄일 수 있다.

    *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는 전원을 끄고, 사용하지 않는 전자 제품의 플러그를 뽑는 다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년에 약 1,200파운드 줄일 수 있다.

    * 문과 창문의 틈새를 막으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년에 약 1,700파운드 줄일 수 있다.

    * 나무 한그루를 심으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년에 약 2,000파운드 줄일 수 있다. 아니면 나무 심는 사람들(Tree People)과 같은 단체를 후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pp. 237f.)


    그녀는 이와 같이 하면 1년에 한 사람당 9,500파운드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고 하면서(p. 238), 그것이 매년 2,000달러 가량을 절약하는 것이 된다고 제시하고 있다(p. 239). 환경을 위한 그녀의 제안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적어도 이 세 가지 점에 있어서는 이 책이 기여하는 것이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실비아 브라운은 이런 기여를 무색하게 할만한 더 큰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2. 문제점들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여러 종말 이해의 문제점을 드러낸 실비안 브라운 자신이 자신의 신통력과 “영매”(靈媒=靈的媒介體)로서의 성격을 강조하면서 자기 나름의 종말 이해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그녀의 심각한 문제가 나타난다. 물론 예언가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그녀는 다른 예언가들과는 다른 면모를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영매”(靈媒)로서 미래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영매로서 나는 이 세시가 끝나는 시점까지 분명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p. 215) 그 구체적 내용으로 그녀는 다음 같은 말을 한다: “2020년이 오기 전에 미국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심장마비로 죽는 모습이 보인다. 대통령직을 위임 받을 부통령이 북한에 선전포고를 하겠다고 선언해서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다... 선전포고를 지지하는 국회와 국제적 동의를 얻으려는 그의 노력은 무산되고, 그 결과 엄청난 소요가 일어날 것이며 그는 임기가 끝나가 전에 암살될 것이다.”(p. 216) 이외에 그녀가 설명하는 미래를 과학 기술의 발달로 감기가 사라지고(p. 218) 범죄를 거의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p. 224). 2010년에는 암과 당료병도 완치되고 2012년이 되기 전에 마비와 파키슨 병이 퇴치될 것이라고 한다(p. 220). 2020년에는 시각 장애와 청각 장애가 극복되고(p. 220), “둥근 지붕을 덮은 도시들이 생겨나고”(p. 229), “초등학교 교실에 15명이 있게 되며”(p. 231), 2025년경에는 합성 혈액이 개발될 것이라고 한다(pp. 220f.). 그러나 2020년경에 심한 폐렴 같은 질병이 전 세계에 심각한 영향을 주었다가 갑가지 사라지고 하기를 10년 주기로 할 것이라고 한다(p. 221). 또한 2030년에는 달 유람여행이 시작되고, 2040년 초반에는 달 기지가 인기 높은 관광지가 될 것이라고 한다(p. 250).

        한편 종교와 관련해서는 먼저 실비아 브라운이 자신의 종교라고 하는 천주교와 관련해서 현재의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마지막 교황이 될 것이고 그 이후에는 추기경 3명이 공동으로 교황 업무를 보게 될 것이라고 하고(p. 225), 2015-18년 사이에 개신교 연합이 뭉쳐져서 기아, 빈곤, 노숙자, 기본적 의료 부족 같은  세계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한다(p. 225). 그리고 2025년에는 모든 종교의 연맹이 만들어져서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의식주와 의료 서비스, 그리고 영적인 보살핌을 제공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펼칠 것”이라고 한다(p. 225). 그 결과 2025년에는 전 세계에 힐링 센터(Healing Center)가 세워질 것이라고 한다. 그 노력의 결과 (모든 이들이 하늘을 나는 호버크라푸트를 타고 다니며 개폐식 지붕으로 차고에 드나들게 되는[p. 229]) 2040년이 되면 세계 종교들 간의 “유사점들이 부각되고, 인도주의적 협력이 뚜렷한 효과를 나타내면서 대화합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 한다(p. 226). 이와 같은 것을 그녀는 영매로서 보고 말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녀의 문제의 하나이다.

         둘째로, 그녀의 이 세상과 저세상, 그리고 환생 이해의 문제점을 말해야 할 것이다. 실비아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저 세상을 잠시 떠나 이 곳에 와서 우리의 영혼을 최대한 개화시키는” 것이라는 이해를 가지고 있다(p. 245). 그래서 그녀는 “우리의 영혼은 저 세상을 떠나는 순간부터 다시 돌아가는 순간까지 그곳을 기억하고 그리워한다”고 말하기도 한다(p. 262). “잠깐씩 현상 학습을 하기 위한”( p. 247) 이 세상에서의 삶은 “영혼이 완벽을 향해 가는 여행”의 하나라는 것이다(p. 246). 그것을 위해 우리는 환생(incarnation) 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브라만교나 불교의 환생이해와는 달리 “인생 지도에 심각하게 불리한 장애를 포함시키는 데는 큰 용기나 지혜가 필요하므로 그것은 존경받을 만한 일이다. 개화된 영혼일수록 그런 결정을 내린다”고 주장하며(p. 246). 자신은 지금의 생이 “52번째이며 마지막 환생”이라고 주장한다(pp. 247f.). 왜 마지막일까? 그녀는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웠거나 아니면 또 다른 ‘현장 학습’을 생각할 때쯤이면 지구가 더 이상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p. 248).

        이렇게 생각하는 브라운은 이 세상에서 악하게 산 사람들은 죽은 뒤에 “하나님도 없고 기쁨도 없고 단지 공허한” 심연에(p. 257) "아주 잠시" 있다가 “곧바로 돌아와 다시 어두운 자궁 속으로 들어간다”고 말한다(257). 미국의 연쇄살인범인 테드 번디 같은 이가 그렇게 된 사람일 것이므로 그와 비슷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에 임신하는 것과 같은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p. 258). 그런데 만일에 이 지구가 더 이상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 되고 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할 때, 브라운은 그와 같은 “어두운 존재들은 자신들을 창조한 하느님을 거부하지만 하느님은 그들을 받아들여 마침내 성스러운 사랑으로 정화할 것이다”고 주장한다(p. 260). 선하게 산 사람들은 결국 “정체성을 버리고 하느님의 무한한 비창조물에게 자신을 바친다”고 하기에 브라운은 그런 용어를 쓰지는 않지만 결국 만인구원론적인 생각을 가지고 그런 사상을 유포하는 것이다. 그녀는 “나는 어느 누구도 지옥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단언하기도 한다(p. 256). 더 나아가서 그녀는 “무저갱은 없다. 불길이 타오르는 고통의 구렁텅이도 없다. 상상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곳으로 영원히 추방을 당하는 일 역시 없다”고 단언한다(pp. 256f.). 이쯤 되면 참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왜 이 책이 정말 쓸데없는 책인지가 아주 명확해 졌을 것이다. 실비아 브라운은 자기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서 성경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녀는 하나님이 이 세상과 우리를 창조하셨다고 생각하기는 한다(pp. 17, 232, 253). 그리고 그녀는 항상 우리를  “지켜주는 안정망과 같은 영원한 질서, 즉 하나님의 계획이 존재한다. 태초 이래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은 영원할 것이다”고 말한다(pp. 244f.). 그러나 그 하나님은 자신이 생각하는 하나님일 뿐이다. 그녀의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할 때 약속했던 것처럼 우리를 영원히 안전하게 지켜 줄” 그런 하나님일 뿐이다. 그녀가 말하는 하나님 과연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신지는 여러 면에서 불분명하다. 거의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하나님, 자신이 판단하는 현재와 미래의 삶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그녀의 생각이 좀 뒤 엉켜 있기는 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저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한편으로 그녀는 우리가 결국 정체성을 버리고 신적인 것에 흡수되도록 자신을 항복하는 것으로 말하기도 한다(pp. 259f.). 그러나 또 다른 곳에서는 다음 같은 말들도 한다: “저 세상은 실재 하며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단지 3feet 위에 또 다른 차원의 세상이 있다... 저 세상에는 부식이나 오염이 없다... 물은 푸르고 푸르며 산과 해안은 수천 년전 지구의 모습을 원형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일어 버린 대륙 아틀란티스와 레무리아도 있고, 이 세상에서는 오래 전에 무너지고 파괴된 위대한 건축, 문학, 예술 작품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262) 만일 지구가 파괴되면 어떻게 되는가? 그 때는 “우리와 저 세상 영혼들이 이미 자연의 순환이 끝난 행성을 떠나 별들 사이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Cosmic Other Side로 가게 된다. 그리하여 영원히 번영하는 Home에서 즐겁고 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영혼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우주의 저 세상(Cosmic Other Side)은 우주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곳에는 더 이상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 행성에서 온 영혼들과 메시아들이 거주하고 있다”(p. 263). 이 같이 생각하는 실비아 브라운의 생각은 영혼만의 영생을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영지주의적이면서도 예전의 영지주의와는 달리 그 영혼의 거주지나 존재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물질적으로 생각하는 좀 뒤 섞여진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세 번째 문제는 여러 종말론을 언급하면서 기독교 종말론도 그런 것의 하나로 여기며 진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기독교의 전통적 종말론도 다른 종말 이해와 같이 문제 있는 것으로 보여 지게 되고 실비아 브라운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들만 나름의 해석을 거쳐서 새롭게 제시되는 것이다. 이는 성경적 종말론에 대한 오해를 가져오게 할 수 있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네 번째 문제점은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선택을 해고 노력해서 우리를 불행하게 하고 파멸 시키는 것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낼 수 있으며, 지켜 나가야 한다는 인간 중심주의가 이 책에 강력히 배어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실비아 브라운의 하나님은 그런 인간 중심주의와 양립할 수 있는 하나님으로 보여 진다.

      

         3. 마치는 말


    우리 시대에 소위 영성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이와 같은 책도 사람들에게 관심을 끄는 것으로 보인다. 실비아 브라운은 “영성이 이 세상에서 전례 없이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p. 13). 또 다른 말로는 “금세기가 진행되면서 인류가 점점 더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고 말한다(p. 244). 종말에 대한 관심이 그런 것을 말해 주는 사인의 하나라고 그녀는 보는 것이다. 여기서 실비아 브라운이 말하는 영성과 기독교가 말하는 영성이 얼마나 다른 것인지를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영성이라는 말을 그저 일반적 용어로 쓰는 것이 얼마나 오해되기 쉬운 것인지를 이런 데서 절감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 시대에 영성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다른 결론들을 이끌어 낼 것인지를 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성경이 말하는 종말 이해를 정확히 드러내는 일에 힘써야 한다. 신약 성경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종말은 이미 임하여 왔으나 아직 임하지 않은 측면이 있는 상황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Anthony A. Hoekema, The Bible and the Future, 류호준 역,『개혁주의 구원론』[서울: 기독교문서 선교회]과 이에 언급된 좋은 책들을 잘 보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루어 진 것에 근거하여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극치에 이르게 하시기를 기원하며 그 나라 백성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날 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마 24:36) 존중하면서 성경에 입각한 분명한 이해로부터 벗어나 사람들의 이런 저런 생각에 밀려 요동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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