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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직의 회복을 확고히 한 도르트 교회 질서신학이야기 2021. 6. 25. 15:51
<월간 고신 생명나무> 2021년 7월호, 43-47에 실린 다음 글 같이 읽어 보셔요. 같이 실린 부산 유은교회의 윤석준 목사님 글과 작은 빛 교화의 성희찬 목사님 글과 같이 읽으면 더 유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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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직의 회복을 확고히 한 도르트 교회 질서
요즈음은 교회에 집사직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가 되었고, 특히 우리 한국 교회에서 오해된 집사의 모습이 집사의 대명사처럼 사용될 정도가 되었다. 이번에는 이 집사직분에 대해서 검토해 보기로 한다.
성경 가운데 언급된 집사직
먼저 성경에서는 신약 교회 안에 집사가 있었음을 분명히 한다. 예를 들어서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빌 1:1)라고 하고 있다. 또한 교회 공동체는 과연 어떤 분들을 집사로 선출해야 하는지 그 원칙과 지침을 바울이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한다(딤전 3:8-21). 그래서 교회 공동체는 이 원칙에 따라서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딤전 3:10)라고 하고 있고, 그리고 이들이 임직한 후에 그 직분을 잘 감당하면 얻는 유익을 다음 같이 말하기도 한다.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딤전 3:3).
또한 구체적으로 집사라는 용어는 사용되고 있지 않으나 그들을 선출할 때에 자격을 말한 것과 그들이 감당한 사역에 비추어 이들이 집사인 것으로 거의 확신하는 사도행전 6장에서 선출된 7명의 직분자들이 아마도 집사라고 여겨지고 있다(행 6:1-6). 그러므로 성경 가운데서 집사의 직분이 있다는 것이 아주 분명하다. 구약에 있지 않은 새로운 직분으로 “신약 교회에 항상 있도록 하신 직분”(즉, 항존직) 가운데 하나로 집사의 직분이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다시 항존직이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상기하자. 이는 신약 교화의 토대를 놓은 아주 비상한 시기에 있었던 비상직원들과는 달리 교회가 이 땅에 있을 때에는 항상 있는 직분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ordinary officer”를 번역한 말이다. 한번 임직하면 계속 그 직분을 가지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역사 속의 집사직
그런데 교회는 곧 바로 이런 고귀한 의미에서 집사직을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세기 이후, 교황 클레멘스 1세 시대에 집사를 “보조자”로 이해하면서 주교를 보좌하며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낮은 계급의 성직자로 강등시켰다. 로마에서 7명의 부제를 제한하여 세웠다고 하며, 그에 따라서 보조자를 각 교구의 7명으로 국한시켰다. 역사 속에서 유명한 부제들로서는 로마시대의 순교자였던 로렌스(Saint Lawrence), 스페인에서 순교한 살고사의 빈센트( Saint Vincent of Saragossa), 프라시코 종단의 창시자인 앗시시의 프란시스(Saint Francis of Assisi), 시리아 사람 에프렘(Saint Ephrem the Syrian), 초기 찬송시 작사자로 유명한 로마노스(Saint Romanos the Melodist) 등이 언급된다. 로마의 부제였던 사람이 교황으로 높여진 경우가 536년 6월 8일에 교황이 된 것으로 여겨지는 실베누스(Pope Silverius)의 경우가 있다.
현재 집사를 이런 식으로 “보조자”(Deacon)로 여기는 기독교 교파로는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여기서는 보제(輔祭)라고 한다), 성공회, 구 가톨릭교회, 북유럽의 루터교 등이 있으며, 감리교에서는 명칭은 수련목(修練牧) 또는 연회의 준회원이라고 한다.
현재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보조자는 영성체, 미사에 참석하지 못한 병자들을 위한 영성체(봉성체), 성경낭독(독서), 강론, 본당 행정보조, 평신도사도직의 수행, 혼배, 장례예절 등 다양한 직무들을 수행한다. 이 때 그들은 일하고 있는 지역의 주교 및 사제의 권위 밑에 있어야 하며 내적 수련, 가능한 한 매일미사, 배당된 성무일도, 적어도 2년에 한 번씩의 피정, 성경독서 등을 포함하여 영신생활에 충실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천주교회와 성공회 및 북유럽 루터교회 모두에서 보조자는 주교와 사제의 권한인 미사집전, 견진성사, 고해성사, 병자성사(조병성사), 성품성사(신품성사) 집전을 할 수 없다.
그런데 성공회에서 보조자는 주교와 사제의 감사성찬례(미사)를 보조한다. 감사성찬례 집전시 보조자는 복음서 낭독, 대도(교회와 사회를 위한 기도), 설교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개혁파 교회에서 회복된 집사직
이와 같이 성직자, 낮은 계급의 성직자가 된 상황이 성경의 가르침과 부합하지 않음을 발견한 개혁 교회 (장로교회)에서는 이제 사도행전 6장이 시사하는 것처럼 성도의 삶을 보살피는 구제의 사역(the ministry of mercy)의 실천을 위해서 성도들 가운데서 이 일을 감당할 집사님들을 선출하여 이런 자비의 사역을 전담하게 하였다. 칼빈이 사역하던 제네바에서는 각 공동체의 집사님들이 성도들을 보살피고 재정적으로 돕는 일을 하기 위해 집사를 세워 그들로 이 일을 감당하게 하였으니 그들이 집사의 장부를 기록한 것이 잔존하고 있어서 이 사역을 연구하는 일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제네바 시 한 가운데 있는 빈민구호소를 관리하는 부부를 모두 다 집사라고 불렀고, 그 구호소 앞에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집사님들이 빵을 나누어준 역사적 상황이 있다.
그 이후로 이런 입장을 취하는 교회들은 성도들 가운데서 성도들이 집사님들을 선출하여 소위 재정 출납과 자비의 사역을 실천하게 하였다. 사도행전 6장의 사역이 매우 중요한 모델로 작용한 것이다. 이와 같이 개혁파 교회는 집사직을 천주교회와 성공회의 낮은 수준의 성직자로부터 성도들로부터 성도들이 선출하여 자비의 사역을 전담하는 일을 회복한 것이다. 이는 집사직이 주교를 섬기는 종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모든 직분자들의 평등성을 분명히 천명했다는 의미에서 성경적 직임에로의 회복이고, 성도들 가운데서 성도들이 선출하게 하는 성경적 방식을 회복했다는 점에서도 성경적 직임을 회복한 것이다.
집사직의 회복을 확고히 한 도르트 교회 질서, 24-26조
도르크 교회질서 24-26조는 개혁파 교회의 이 전통을 발 받아들여서 이를 확고히 한 점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24조는 단순하다. “집사님들은 장로님들에 대해서 그리한 바와 같은 방식으로 선출하고 승인하고 장립한다.” 그러므로 장로님들을 성도들 가운데서 성도들이 선출하듯이 같은 방식으로 선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많은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할 나위 없다. 주께서 과연 어떤 분들을 우리 교호의 집사님들도 세우시는 지를 진지하게 물으면서 기도하면서 성도들이 선출해야 한다. 선출되면 그것으로 마쳐지는 것이 아니고 집사님들로서 소정의 공부를 해야 한다. 참으로 그리스도의 제자인지를 분명히 하고, 그리스도인답게 이 세상 속에서 사는 지를 점검하고, 집사가 과연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 지를 잘 가르침 받아야 한다. 성도들의 구체적인 삶을 살펴야 하기에 어려운 작업이다. 그리고 교회의 대표자들에게서 시취로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 후에 엄숙하게 교회의 집사님으로 주께서 세우시는 장립식을 하게 된다. 드디어 장립 받은 집사가 되는 것이다.
장립된 집사가 해야 할 일을 25조가 규정하고 있다. 집사님들의 특별한 직임으로 성도들의 구제 헌금과 다른 자선 기금(contributions of charity)을 성실하고 열심히 모금하여, 상호 협의한 후에 가난한 분들에게 역시 같은 신실성과 열심히 나누어 주는 것이라고 한다. 모으고 나누는 것이다. 이 때 거주 하는 자들과 낯선 자들 모두에게 그들의 필요가 요구하는 대로 나누어주어야 한다고 하고 있으니, 당시 상황에서는 자신들 주변의 거주 하는 분들과 이 곳에 온 객들에게도 나누어야 한다는 의미 일 것이고, 이를 현대적으로 적용한다면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분들에게나 밖에 있는 분들에게”라고 적용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어려움 가운데 있는 분들을 심방하여 위로 하는 것도 집사님들의 직무로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는 구제 헌금이 잘못 사용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나고 하고, 당회에 보고하고 당회가 적절하다고 판단한 때에 회중들에게도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바른 집행을 위한 좋은 장치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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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집사직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정작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들은 상당히 적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저 집사직이 보편적으로 있다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참으로 흘려가면서 성경적 직임을 회복한 교회답게 우리들 가운데서 집사님들이 과연 성경적 집사직을 잘 감당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 집사님들도 열심을 내야 하고, 집사님들의 이런 모금과 배분에 우리들 모두 열심히 참여해서, 이런 집사직이 처음 세워졌을 때나 다시 회복되었을 때의 교회들과 같이 우리들 가운데 핍절한 자가 없도록 하며, 다들 열심히 일해서 자신이 먹을 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의 삶까지를 책임지려는 의식으로 가득차서 자비의 직임을 제대로 감당해 나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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