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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자들의 생활에 대한 지지
    교회와 설교 2021. 3. 25. 16:09

    월간 고신 생명나무(20214월호): 36-41에 실린 목회자들의 생활에 대한 지지”를 여기에도 올리니 다 같이 읽으시고 생각해 보시지요. 이 잡지에 실린 다른 글들도 같이 참조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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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적 원리

     

     

    교회 공동체 안에는 항상 자신의 모든 시간을 내어서 섬기는 사람들”(full-time ministers)이 있어 왔다. 이에 대해서 성경은 일정한 원칙을 가르치고 있다. 자신은 자신이 스스로 생계를 해결하면서 사역하기도 하였지만 사역자들은 교회 공동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라고 하면서 바울은 다음 같이 가르친다.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 9:7-14)

     

     

    물론 바울 자신은 이런 권한을 사용하지 아니 하였다고 하면서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고전 9:15)고 말한다. 사도의 이 원칙 제시를 오해하고 이상하게 방해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바울의 사역에 대해서 여러 교회 공동체가 여러 면에도 도운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예를 들어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다음 같이 말한 바 있다.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4:14-18)

     

     

    그러므로 바울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한 대로 (고전 9:12) 자비량하면서 사역하면서도, 각 교회가 보내는 것을 자신도 사용하였고(4), 대개는 다른 교회들을 위해 사용하도록 하였음을 알 수 있다(고전 16:1-4; 고후 8, 9장 등). 이 원칙에 따라서 교회 안에서 시간을 다 내어 사역하는 사람들은 교회가 그 생계 전체를 책임지는 것이 원칙이라고 교회는 주장해 왔다.

     

     

           교회  역사에서 나타난 부작용

     

     

    교회 안에서 예배 방식과 교직 제도에 있어서만 성경의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고 직분자들을 지지하는 데에 있어서도 잘못하는 일이 있게 되었다. 교회가 너무 가난한 때에도 이렇게 일하는 분들을 잘 지지하지 못하였으나, 교회가 부유하게 되면서도 문제가 나타났다.

     

     

          (1) 첫째 문제: 일하지 않고 성직록을 받는 문제

     

    중세 시대에 많은 성도들이 헌금을 많이 하고 재산을 기부하고 하면서 교회가 부유해지자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성직록을 주는 일도 나타났다. 대개는 후대에 교회에 봉사할 사람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이것이 사용되기도 하였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좋은 기금이 마련된 것이기는 하나 본래는 교회 공동체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지지하기 위한 것이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돌아가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칼빈의 아버지가 노아용 교회에서 중요하게 활동하면서 가까운 주교를 통해서 자신의 아들이게 이런 성직록을 받게 하여 공부시킨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래서 후에 성경적 원리를 깨달은 칼빈은 이런 성직록을 취소시키는 작업을 하였다.

     

     

          (2) 둘째 문제: 여러 교구의 성직을 차지하고 그 모든 교구로부터 성직록을 받는 문제

     

    위에서 살핀 소위 부재 사제들이 있게 되고, 그런 분들이 성직록을 받는 일이 상당히 일반화 되다 보니, 일하지 아니하고도 성직록을 받는 것이 일반화되어 급기야는 여러 교구의 성직을 받고 따라서 그 여러 교구의 성직록을 다 받는 일도 일어났다. 이렇게 큰 돈이 연관되니 이런 주교직을 얻기 위해서 교황청에 상당한 기금을 미리 헌납하거나 헌납할 것을 약속하면서 일종의 매매를 통해 좋은 교구 자리를 얻는 일도 있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루터가 아직 천주교 사제로 있을 때에 당시 마인츠 주교로 임명된 호헨졸른의 알브레흐트(Albrecht of Hohenzollern)였다. 그는 그 지역에서 가장 큰 세력가인 선제후 요아힘 폰 브란덴브르크의 동생이고, 이미 마그델부르그와 할버슈타트 교구 2개의 주교직 가진 굉장한 권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2개의 주교직이라는 말이 어불성설인데, 교황 레오 10세는 1514819일에 그에게 마인츠 주교직을 또 제안하였다고 한다. 이에 대한 댓가로 교황은 1,200 두카트 요구하고, Albert700 두카트를 내겠다고 주장하다가, 결국 1,000 두카트로 낙찰되었다고 한다. 그 대가의 하나로 그의 영토 내에서 알베르흐트 대주교가 8년 동안 면벌부를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는데, 이 때 수익금의 절반은 대주교가, 그리고 절반은 베드로 성당 건축비로 내도록 했다고 한다. 이런 식의 성직 매매는 중세기 내내 곳곳에서 행해졌었다.

     

     

         (3) 셋째 문제: 비공식적 지지

     

    이런 상황에서 문제를 느낀 사람들은 스스로 자정 운동을 벌였는데 그 중의 하나가 탁발 수도승의 출현이다. 특히 프란시스칸 수도사들은 아예 의도적으로 자발적인 가난을 선언하고, 오직 주민들의 도움에 의해서만 살아가야 한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와 비슷하게 이런 저런 방도로 풀타임 사역자들을 교회가 지원하지 않는 문제가 나타날 위험은 항상 있다. 특히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줄게 되면 풀타임 사역자들을 지원할 여력이 없어지고, 그 이전에라도 인간들의 부패성이 작용해서 지원을 하지 않거나 최소한으로 하려는 일이 있게 된다. 이런 일들을 교회의 역사 안에게 지속적으로 있었고, 현재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도르트 교회 질서에 나타난 원리

     

     

    도르트 교회 질서는 이전에 개혁파 교회에서 성경적 원리를 명백히 한 것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하면서 당회가 회중의 대표로서 자기들의 사역자들을 적절하게 지지해야 한다.”는 원리를 천명하였다. 그 교회에서 말씀과 가르침에 더 수고하는 분들은 그 교회가 생활을 지지해야 한다는 성경적 원리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 때 당회가 교회의 대표로 이 일을 감당하게 되어 있다. 특히 어떤 사역자가 나이 질병이나 다른 이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지라도 목사의 영예와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며 그들이 봉사한 교회는 그들의 필요를 영예롭게 제공해야 한다(사역자의 부인과 자녀들에게도 마찬가지다).”(13)라고 규정할 정도로 넉넉함을 드러내어 주었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의 회원들이 얼마나 풍성하게 헌상하는 지가 전제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이 잘 경험하고 있듯이, 성경적 원리에 관심이 없거나 헌신적으로 헌상하지 않는 교회들은 도무지 이런 풍성함과 넉넉함을 드러낼 수 없다.

     

    그리고 그런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제도만 성경이 말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며 그 말씀에 온전히 복종하려는 의도가 있을 때만 이런 실천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는 말씀 사역자들에 대한 생활의 지지에 신경을 쓴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또 하나 중요한 원리는 각각의 교회 공동체가 그저 자신의 일들을 처리하지 않게 한 것이다. 여기서 개혁파 교회와 장로교회가 회중 교회와는 다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도르트 교회 질서에서는 치리회의 결정과 사전 지식이 없이는 사역자들을 사임시킬 수 없고, 부양이 부족한 때에도 시무 이동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11)고 명시하고 있다. 치리회는 여러 교회의 사역자들이 함께 그 지역의 교회들을 치리하며 함께 목회한다는 원리를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 교회 질서의 다른 부분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도르트레흐트 큰 예배당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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