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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反) 기독교 문화 확산 앞에선 우리의 과제”
    우리사회와 기독교 2021. 2. 23. 19:37

    「신앙세계」 623 (2021년 1, 2월호): 36-39에 게재된 글을 여기에도 올려서 더 많은 독자들이게 알리고자 합니다. 읽고 잘 생각해 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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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주변에 반-기독교적 문화가 점점 더 확장되어 가는 정황 속에 있다. 요즈음 기독교에 대해 반대하는 노골적인 분위기가 드러나자 많은 사람들은 마치 새로운 일이 일어난 것과 같이 반응하려고 한다.

     

     

              먼저 생각할 일: 이 땅에서 기독교는 항상 반-기독교적 분위기 가운데 있었다는 사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할 때 가장 기본적으로 지적해야 할 일은 오랫동안 기독교의 영향력 가운데 있던 서구에서는 이것이 새로운 문제인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그런데 사실 엄격하게 보자면, 지난 수십 년 동안 서구도 계속 이런 분위기로 나아가고 있었기에 서구에서도 이것은 사실 새로운 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에게는 이 일이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부터 우리는 계속해서 기독교에 대해 반대하는 분위기 가운데 있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이 땅에 복음이 전해진 19세기 말에는 아주 심각하게 반-기독교적이었고, 20세기 초는 거의 대부분을 일본제국주의의 강압 아래서 기독교는 핍박 받으며 저항하며 있었다고 할 수 있으니, 그 전에도 그랬지만 특히 신사참배를 심각하게 강요하던 1930년대 말부터는 아주 강한 반-기독교적 분위기 가운데 있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상황은 호전되는 듯했다. 당시 독립한 다른 나라들보다 우리나라는 기독교에 대해서 덜 적대적이긴 했다. 그 동안 기독교를 배경으로 하는 나라로부터 제국주의적 지배와 수탈을 당한 것이 아니고, 반 기독교적인 일본으로부터 수탈을 당했고, 오히려 수구 선교사들 중 다수는 우리의 독립을 옹호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소위 식민지 이후적 사유나 식민지 이후적 신학(Post-colonial theology)의 요구가 그리 적실성을 가지지 못한다. 오히려 미국 등 서구 선교사들과 그 배후의 나라들이 일본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듯한 인상이 형성되어 나라의 독립과 건국에 기독교가 도움이 된다는 의식이 있기도 했다. 심훈의 상록수에 나타나고 있는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그런 것을 잘 보여 준다. 우리나라의 독립과 나라를 새롭게 하는 일에 기독교가 도움이 되면 기독교도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는 기독교 이해에 상당히 심각한 왜곡을 가져 온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기독교는 민족의 독립과 나라를 새롭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기때문이다. 이 말을 받아들여서 그대로 삼키기 어려운 말인가 하는 것에서 우리가 얼마나 민족의 독립과 갱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지가 잘 나타난다).

     

    사실 19458우러 15일 해방 이후에 한편으로는 서구와 특히 전쟁 상황에서 소위 연합군의 속한 여러 나라들의 원조 때문에 서구의 기독교에 대한 호감이 우리에게 형성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한편으로는 도움을 활용하려는 마음과 그와 연관된 생각과 왜곡이 있었고, 그런 도움이 낳을 문제들에 대한 일종의 저항 의식을 불러 일으켜서, 상당히 많은 경우에 기독교 자체와 직면하지 못한 모습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6. 25 전쟁 후에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도 역시 애매한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도움과 원조와 차관을 제공하는 서구에 대한 감사와 동경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그로부터 나오는 반항이 뒤섞이면서 이른 바 <국제 시장>의 시대 , 영화 <국제 시장>이 그리고 있는 시대가 펼쳐졌고 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기독교에 대한 환상과 착각이 우리 안팎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 시기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되는 일이 발생해서 한 때 우리 인구의 20%-25%가 기독교권에 속해 있는 것이라는 말들이 회자(膾炙)될 정도였으나,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가 대다수(the majority)를 차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다. 그 숫자도 의심스럽거니와 90년대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해서 그 숫자가 줄고 있다고들 분석하고 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우리 시회가 친기독교적인 때는 한 번도 없었다. 따라서 요즈음 나타나고 있는 반-기독교적인 분위기를 마치 새로운 것인 것처럼 여기지 말아야 한다. 우리사회는 한 번도 반-기독교적 상황 속에 있지 않았던 때가 없었었다.

     

     

           그러면 이제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문제들 - 예를 들어서, 동성애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일, 낙태의 합법화를 추진하는 일, 그리고 사유리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라고 할 수 있는 비혼 출산의 문제 등이 새로운 문제라고 보여지기는 하나, 이 모든 문제의 배후에 있는 여성주의적 관점(the feminist perspective)과 네오 마르크스적 관점(neo-Marxist perspective)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서구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퍼져 나가고 있던 것이니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새로운 점은 이제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문제라고 의식한다는 점이다. 일부는 우리 사회가 더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의식하면서 그렇게 나아가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고, 일부는 이것이 참으로 문제가 되는 상황이라고 의식하면서 그에 저항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전에는 이 두 방향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소수였는데 이제는 이런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점증하고 있고,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점증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전에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학문적으로 이것을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학자들이 아니어도 상당히 많은 사회 운동가들이 이를 말하고 문제시한다.

     

    그러므로 이런 상황은 오히려 기회이다. 어떤 기회일까? 기본적으로 두 가지 기회가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첫째는, 우리 시대의 소위 문화 전쟁(culture war)을 진지하게 그리고 더 심각하게 성찰하는 기회라는 것을 말해야 한다. 이미 1980년대 이전부터 이것을 강조하여도 그 당시에는 이런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소수였다. 그런데 이제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서 말한다. 그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진지하게 이 문제에로 깊이 있게 나아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소수이고, 그 중에서 상당수는 우리가 저항해야 할 문화에 반쯤은 사로잡혀 있는 듯한 형국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허위의식을 제거하고 참된 기독교”(genuine Christianity)를 잘 드러내고 그것에 참으로 헌신해야 한다.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도 문제이지만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기독교가 온전한 기독교가 아닐 때 이단이면 더 큰 문제이고, 비록 이단은 아닐지라도 이런 저런 방식으로 왜곡된 기독교일 때, 그 폐해는 얼마나 크겠는가? 특히 우리가 상당히 왜곡된 기독교적 시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반기독교적 세력과 투쟁을 강조할 때 과연 어떤 인상을 주고, 어떤 결과가 있을 것이지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첫째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자신이 진정한 기독교를 가지고 참된 기독교 세계관을 아주 분명하게 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참된 문화 전쟁 - 그 어려운 영적인 전쟁을 제대로 수행할 준비를 하는 것이 된다.

     

    둘째로, 이 시기에도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복음 전도”(evangelism)를 해야 한다. 이런 반기독교적인 시대에 무슨 복음 전도냐고 하는 생각은 이미 사탄의 전략에 말려든 것이다. 이 땅에서, 아니 전 세계적으로 처음부터도 기독교의 복음 전도는 항상 반-기독교적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바울 등 사도들이 살면서 복음을 전하던 시기는 물론이거니와 313년 기독교를 믿어도 된다는 밀라노 칙령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반-기독교적 정황 가운데서 천국 복음이 선포되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했으나 역사가 잘 말해 주고 터툴리안이 잘 정리했듯이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었다.” 이 땅에서 기독교 복음이 처음 전도 될 때도 역시 반-기독교적 상황에서 복음이 말과 삶으로 전달되었다. 우리가 복음을 참으로 우리의 삶으로 살아 내면서 우리의 피와 몸으로 복음을 표현하며 입으로 복음을 전할 때, 주께서는 우리의 미약한 노력도 사용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 반-기독교적 시대도 복음 전도의 시대라는 것을 깊이 의식하면서 이 시기에 참된 복음을 제대로 전해 나가야 한다. 번영의 복음 같이 왜곡된 복음 말고, 믿으면 이 땅에서 축복 받고 죽으면 좋은 곳에 간다는 아주 단순한 기복신앙 같은 것 말고, 성경이 참으로 말하는 진정한 천국 복음을 민족으로 가슴마다 심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이 시기야 말로 또 다시 민족 복음화를 위한 노력이 경주되어져야 할 때이다.

     

    지난 가을 차종률 목사님께 올리신 사진입니다. 이 사진 속 나무 처럼 우리들도 어디 있든지 우리의 사명을 다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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