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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은 과연 전문적으로 신학 공부를 하는 분들의 전유물인가?
    신학이야기 2018. 2. 24. 11:10

    작년에 <개혁신보>에 게재 했던 글을 다시 올려 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도전을 받고 진지하게 책을 읽고 성경적 사고의 길로 나아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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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은 과연 전문적으로 신학 공부를 하는 분들의 전유물인가?

       

     

    다음 같은 질문으로 이 논의를 시작하려고 한다: “신학은 과연 전문적으로 신학 공부를 하는 분들의 전유물인가?” 이는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신학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우선 대답부터 하면, “그렇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모두 신학을 해야 하고, 사실 신학을 하는 사람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의미의 신학은 전문적 신학은 아니다. 사실 전문적 의미로신학을 하시는 분들은 극히 적다고 할 수 있다. 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어느 나라에서나 신학한다”(theologieren, doing theology)고 표현한다. 서구에서는 이 말을 진지하게 신학하는 신학자의 의미로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서구의 경우에도 대개의 경우에는 대개의 동양 학생들의 표현과 같이 우리들은 전문적인 신학하는 사람은 아니고, 그저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일 뿐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를 하고 있는 목사님들의 경우에도 거의 대부분은 자신들은 신학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그저 목회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분들 가운데서도 자신이 전문적 의미의 신학을 하는 사람, 즉 신학자(theologian)라고 생각하거나 특히 다른 분들이 진정 그렇게 여기는 분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러므로 전문적으로 신학하는 일은 평생 그 일에 종사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사명으로 맡겨진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전문적으로 신학하는 것만이 신학하는 것은 아니다. 비전문적으로 신학하는 일도 있고, 오히려 더 많이 있다. 기리고 그것이 신학하는 일의 본래적 위미이다. 전문적으로 신학하시는 분들은 우리들의 이런 신학 작업을 돕는 분들이어야 하고, 그것이 전문적 신학자의 사명이다.

     

    모든 목회자는 신학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가장 먼저 모든 목회자는 신학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물론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전문적 의미의 신학자는 아니며,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만일에 목회자가 성경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그 가르침을 회중들에게 그들의 수준에 맡도록 전달하며, 성도들과 함께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여 가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는 진정한 의미의 목화자라고 하기는 어렵다. 여기에 진정한 목회자와 그렇지 않은 목회자의 차이가 있다. 진정한 목회자는 성경을 날마다 공부하며, 기도하면서 그 의미를 파악하여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오늘의 상황과 구체적인 성도들의 삶에 적용하는 사람이다. 바로 그것이 신학하는 일이다.

    이런 일에 힘쓰지 않는 목회자가 있다면, 그는 아무리 많은 사람을 모으고 큰 교회를 목회하는 것처럼 보여도 참된 목회자가 아니고, 성경이 말하는 삯꾼 목자일 뿐이다. 참된 목회자는 (1) 날마다 기도하면서 성경을 공부하여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부족하지만 그 일을 지속하여 날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에 다가가야 한다. (2) 참된 목회자는 그렇게 발견한 성경의 뜻을 회중의 정황에 적용하여 회중들이 이해할 수 있게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전해 주어야 한다. (3) 참된 목회자는 성도들과 함께 성경에서 발견한 참된 교회의 모습이 이 땅에 문에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나도록 기도하며 애쓰는 사람이다.

     

    성도(聖徒)신학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참된 목회자와 함께 교회의 회원으로 있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면서 그 말씀의 뜻을 잘 파악해 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애쓰게 된다. 그러니 이 분들 모두가 다 넓은 의미의 신학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바른 목회자와 함께 하는 모든 이들 그들 모두를 지칭하는 말이 성도(聖徒)”, 거룩한 무리들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진정한 의미이다. 성경을 바로 공부한 사람들은 모두 이와 같이 생각해 가게 된다. 그것이 이 글에서 말하는 넓은 의미의 신학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위의 진술이 잘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 더 나아가서 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의 신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데서 신학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잘 드러난다. 천주교회(the Roman Catholic Church)에서는 전문적인 성직자들 이외의 사람들을 전문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뜻에서 평신도”(平信徒, layman, 오늘날은 layperson이라늠 말을 더 선호한다.)라고 지칭하였다. 종교개혁을 하면서 모든 것을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변혁시키고자 하는 개혁자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사제들이고, 성직자들이라고 하면서 상호 목회의 원칙을 강조하였다. 물론 이 말은 전문적으로 목회하는 분들을 무시하시나 그런 분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고, 각기 은사 받은 대로 교회 공동체 안에서 봉사하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들 모두는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수행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이 되었고 (우리가 강조하는 신학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교회 공동체의 모임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 하면서 기도하는 중에성경을 계속 공부하며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공동체가 되었다 이를 우리들이 사용하는 말로 하면 신학하는 공동체가 된 것이다. 성경을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공동체는 평신도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거나, 될 수 있는 대로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면 성도들은 과연 어떻게 신학할 것인가?

     

    전문적인 신학자가 아닌 우리들은 (1) 우리들의 한도 내에서 목회자들의 인도를 따라서 성경을 정확하게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열심히 기도하면서, 시간을 내서 성경을 진지하게 공부해야 한다. 부족하지만 이 일을 위해 노력하다 보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경륜을 전체적으로 깨닫게 된다(the whole counsel of God). 그로부터 (2) 성도들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생각하는 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게 느끼는 일,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게 결단하고 사는 일을 향해 나가가게 되어야 한다. 그것이 참으로 복되게 사는 일인 신학을 하는 일이다. 이 작업은 이 세상에서도 이루어지고, 죽어서 우리게 잠시 있게 되는 하늘”(heaven)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주님의 재림 뒤에 더 온전한 신학을 우리 모두 해 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일,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서 생각하는 일을 이미 이 땅에서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박 윤선 목사님은 계시의존사색”(啓示依存思索)이라고 표현했었다.

     

    한국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이런 의미의 계시의존사색을 할 수 있기 바란다. 그리하여 한국 교회가 이렇게 바르게 신학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할 때에 지금 한국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우리들의 많은 문제들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 일을 얼마나 빨리 하기 시작하느냐, 얼마나 진지하게 하느냐, 그리고 특히 얼마나 지속적으로 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 모두가 이런 의미에서 주님의 신실한 종들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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