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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토트 목사님을 아쉬워 하며신학이야기 2011. 7. 29. 08:04
존스토트 목사님께서 향년 90세로 (은퇴한 영국 목사님들이 사는 곳의 하나인) Surrey에 있는 St. Barnabas College에서 많은 친구들이 모여 성경과 헨델의 메시야를 들으면서 하늘의 부름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듣고(http://www.bbc.co.uk/news/uk-14320915; http://www.myfoxatlanta.com/dpps/news/anglican-evangelist-john-stott-dies-dpgonc-km-20110727_14324824), 그 분 개인만을 생각하면 김재영 목사님께서 페이스 북에서 표현하신대로 하나님께서 안식을 주신 것을 감사할 수 있고, 또 전 세계 기독교를 보면 상당히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또한 그를 아쉬워 하는 분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냉소적인 생각도 해 봅니다. 그를 진정으로 아쉬워하고, 그리워한다면 그가 한 말과 그 행적을 따라가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입니다. 이 기회에 기독교에 대한 스토트 목사님의 기여 등을 간단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1921. 4 . 27- 2011, 7. 27) 88세 생신 때 찍었다는 사진
첫째로, 그는 목회자가 계속해서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 좋은 예를 남겼습니다. 그가 열심히 공부하고 써 놓은 책이 많아서 많은 사람들은 그가 학자라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물론 그는 참으로 학자였습니다. 캠브리쥐대학교에서 불어와 신학을 전공하여 두 분야 모두에서 우등(first class)으로 졸업하고 역시 캠브리쥐의 리들리 홀에서 영국 교회 사제로서의 훈련을 받은 그는 그러나 무엇보다 목회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목회자는 평생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 대표적인 예입니다. 나의 친구 David Currie가 자주 말하였듯이 "왜 뛰어난 학자는 학교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뛰어난 학자를 교회가 가지도록 하자"고 한 말을 몸소 실현한 귀한 모범입니다. 스토트 목사님께서 사랑하던 영국의 청교도 목사님들처럼 그는 20세기 상황에서 공부하는 목회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드러내어 주었습니다. 이점은 한국 목회자들이 특별히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오전에는 그의 목사관 서재를 지키는 일에 헌신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좋은 설교와 목회는 책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는 것을 잘 보여준 것입니다. 이점은 우리들이 두고 두고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로서 그는 무엇보다도 성경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잘 강해하며 설교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가 섬기던 런던 중심부의 All Soul's Church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들으려고 모였던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1945년에 목사로 임직하자마자 와서 이 교회 부목사로 섬기다가, 1950년부터 1975년까지 담임목사로 섬겼다고 합니다).
(1950년 All Soul's Church 담임 목사 임직식 때에 찍은 사진)
제가 그 교회를 처음 방문했던 1984년은 그가 이미 1975년에 은퇴하고 때때로만 설교하던 때이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예배에 참여하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제가 참여했던 1984년 9월의 한 주일에 내 옆에 앉았던 젊은이는 Oxford 대학교 학생이었는데,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자주 옥스포드로부터 런던까지 온다고 말하였습니다. 그에게 예배 마치고 커피를 사주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날 저녁예배는 스토트 목사님 자신이 설교하신다고 하여 저녁예배에 참여했을 때 1,000여명의 사람들이 저녁에 하나님께 예배하고, 말씀을 듣고 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All Soul's Church와 로이드 존스 목사님께서 목회하셨었고 (제가 유학할 때에는 미국인 목사님인 R. T. Kendall이 목회하던, 그러나 그도 이제는 은퇴하였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채플과 웨일즈의 예배당, 아버딘의 신실한 성도들이 모이던 예배당에 주일 저녁 예배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던 것을 생각하면, 특히 겨울에는 4시만 되면 깜깜해지는 그런 곳에서도 주일 저녁예배를 지켜가던 그 교회들을 생각하면 오늘날 우리들의 한국교회에서 주일 저녁예배가 무시되고 있는 상황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신실한 목회자들이 목회하는 곳은 언제나 사람들이 예배를 중요시한다는 것을 자주 목격합니다. ALL SOUL'S Church 도 그런 곳의 하나였습니다. 신실한 목회자인 스토트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점입니다.
그 날 저녁 예배 마친 뒤에 그의 설교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이제 신학 석사 학위를 하기 위해 한국에서 온 학생이라고 하자 1984년 당시 김명혁 교수님께서 그의 선교에 관한 책을 번역하신 것을 언급하시면서 한국의 어느 교단 사람인가고 물으며 "합동, 통합" 등의 용어를 한국말로 하실 정도로 한국 상황에도 밝았던, 이제 막 유학을 시작하는 학생에게 손을 벌리시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공부에 복주시기를 원한다"는 말을 하실 때 한편으로는 너무 상투적인 목화자다운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말씀을 감사해 하던 그 때가 벌써 27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그의 그의 축복을 들을 수는 없지만 그것을 아쉬워 하는 사람들은 그가 쓴 여러 책들을 심각하게 읽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나아 가려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그가 명확한 복음주의적 입장을 가지고서 성경을 중요시하면서 설교하고 강연하고 책을 쓰고 활동하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의 여러 주석과 강해서는 그가 얼마나 성경을 존중하는 태도로 성경을 설명하고 있는 지를 잘 알게 해 주는 것입니다. 학자들 가운데 호주의 레온 모리스나 NICNT, NICOT 주석을 쓰신 분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언제나 본문에 충실하되 그 성경적 의미를 잘 드러내 주는 작업을 그는 해 주었습니다. 특히 "성령 세례와 세령 충만"에 대한 짧은 책은 이 문제에 대한 명확히 개혁파적인 입장을 잘 드러낸 준 고전에 가까운 것이어서 개혁신학자인 안토니 후크마도 그 책은 적극적으로 인용하면서 이 문제를 설명하려고 애쓰던 것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오늘 날 성경을 비평적으로 대하려 하고 성경을 존중하고 그 형성에 관여 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무시하는 해석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더 귀하게 여기면 존중해야 할 태도가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셋째로 그는 우리 시대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 성경의 가르침을 적용하고 그것들과 관여하면서 해결하려는 적극적 노력을 보인 진정한 복음주의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올 소울즈 교회 안에 이 문제를 돕기 위한 전문가 위원회가 있었다는 것은 그의 책으 읽은 사람들은 누구나 잘 아는 매우 잘 알려진 이야기 입니다.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 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고민하며 효과적으로 설교하기 위해 애쓴 그의 모습을 이제는 <현대 사회의 문제들과 기독교적인 대답>을 통해서 더욱 더 깊이 생각하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가 은퇴후에 현대 목회 연구소 같은 것인 Langham Partnership International을 세워서 2007년까지 봉사하면서 많은 목화자들을 도우려고 하던 그 진정한 의도를 높이 사야 할 것입니다.
넷째로, 그는 영국 안에서나 전세계적으로 복음주의 운동을 확산하기 위해 애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은 그를 현대 복음주의 운동의 형성자(건축자)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WCC 회의에 참여하며 그 문제점을 목도하다가 결국은 복음주의자들을 결집하여 세계 복음화를 위한 로잔 선언(1974)을 하도록 했던 장본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람이 스토트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늘날 복음주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의 기조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로잔 선언을 우리들이 참으로 깊이 있게 생각하며 동의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로잔 선언에 동의하는 진정으로 성경을 사랑하는 이들을 형제 복음주의자로 여기면서 같이 활동하려고 하던 그 노력이 지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이 바쁜 삶을 살면서도 그의 취미 활동인 새 관찰(Bird Watching)을 계속해 나간 것은 환경 문제에 대한 그의 관심과 함께 그리스도인들이 여가를 보는 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함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가 우리 나라에 방문 했을 때도 여유 시간이 있으면 새 관찰 할 수 있는 기회를 물었었다는 것은 의 한국 방문에 대해 들었던 사람들은 신기하게 여겼던 점의 하나입니다. 기독교적인 삶이 생활화된 서구인들과 달리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거의 주의 사역을 위한 일 중독자들에 가깝기에 이렇게 여유를 내어 '새 관찰'이라는 취미를 즐기던 스토트 목사님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를 떠나 보내면서 아쉬운 점은 그가 (1) 데이비드 에드워즈의 유도 심문에 답하면서 영혼 멸절설(annihilation theory)을 선호 할 것이라고 말한 점, (2) 로이드 존스와의 단절, 그리하여 청교도 컨퍼런스가 계속되지 못하도록 한 점 (즉, 그와 로이드 존스 ,패커 같은 분들의 유대가 지속되었어야 우리가 말하는 복음주의의 영향력이 더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아쉬움의 표현입니다) (3) 몇몇 문제에서 특히 그가 속해 있던 성공회 전체를 좀더 성경적인 방향으로 전환하는 일에서 별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는 점 (이점은 어떤 교회가 기성화되었을 때 그것을 성경적으로 돌이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수많은 청교도들과 스토트나 페커 같은 분들과 함께 아쉬워 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오늘날에는 그와 같이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들 보다 이상한 성령 운동을 하는 분들이 우리 주변에 더 많고, 그런 분들의 책들이 주변에 많이 팔리고 읽히고 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스토트 목사님의 하늘 부르심 받음을 게기로 우리 주변에 좀더 성경에 가깝게 가는 운동이 더 일어 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것이 하늘에서 안식을 누리고 계시는 스토트 목사님이 원하시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가 섬기던 올 소울즈 교회 홈페지에 실린 글도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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