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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 가정, 그 아름다운 이름에 부합한 모습을 지향하며(1)
    카테고리 없음 2011. 5. 4. 11:50

    브니엘 신문 가정의 달 특집호 요청으로 작성된 글을 몇 차례에 걸쳐서 미리 올려 봅니다. 많이들 읽으시고 같이 생각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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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가정", 그 아름다운 이름에 부합한 모습을 지향하며(1)

     

    기독교가 우리들에게 전파된 지도 벌써 120년이 넘었다. 그동안 우리 선배들은 복음을 잘 받아들였고 복음에 근거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고, 더 나아가서 신실하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모진 애를 써 왔다. 그 결과 오늘날 대한민국 안에는 상당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있게 되었고, 온 세계가 대한민국의 복음화에 대해서 놀라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듯이, 우리나라에는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요 세상의 구주요 주님이시라고 믿는 분들보다는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들이 훨씬 더 많이 있다. 그러니 기독교는 우리 사회의 대다수(majority)의 종교가 아직 아니다. 그런데도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기독교인들이 우리 사회의 대다수인 듯한 인상을 주면서 행동하여 믿는 사람들과 특히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을 여러 면에서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데서 잘 드러나듯이 우리들의 교회 안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을 찾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 사회 속에서 우리들의 기독교는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는 문제투성이의 기독교로 나타나고 있다. 오죽하면 중세 말기 종교개혁을 필요로 할 때의 교회와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의 정황을 비교하며 생각하는 분들이 상당히 있겠는가? 심지어 어떤 분들은 오늘날 한국 땅의 기독교인들이 이 사회에 유익이기 보다는 오히려 해가 되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상황인가? 이와 같은 것들은 지금 우리들이 주님의 뜻대로 이 세상을 살고 있지 않다는 명백한 증거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문제들 가운데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역시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을 과연 “기독교 가정”(Christian family)이라고 할 수 있는가와 관련된 문제라고 여겨진다. 이것이야말로 이 가정의 달에 우리가 심각하게 반성하면서 생각해 보아야 할 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기독교 가정"이 어떤 가정이고, 과연 어떤 모습을 지녀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와 관련해서 과연 어떤 것인가? 가정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단위라고 할 수 있다. 처음 사람을 만드실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그저 한 사람이 계속 있게 하거나 사람들이 따로 따로 있도록 창조하지 않으셨다. 처음부터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함께 살도록 사람들을 창조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창 1:27 참조). 이와 같이 사람은 처음부터 더불어 살도록 창조된 것이다. 그렇게 더불어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가정이다. 첫 사람들은 부모가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처음 커플의 혼인 후에 앞으로의 모든 부부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큰 원칙을 천명해 주시기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고 하셨다(창 2:24). 이 말씀에 따라서 처음 가정이 탄생하게 되었고, 그 후 하나님께서 축복하고 명령하여 주신대로 생육하게 되면(즉, 아이들을 낳게 되면) 사람들은 더 확대된 가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은 처음부터 하나님에 의해서 의도된 공동체이므로 가정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장정을 이루며 살 것을 의도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의 모습을 이루어 가시기를 원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타락과 함께 우리의 가정도 타락한 가정이 되었다는 점에 있다. 아담과 하와의 처음 가정도 타락했고, 이 세상의 모든 가정들도 다 타락한 가정이 되었다. 타락한 가정 내에서는 그 성원들이 서로가 서로를 지배해 보려고 애를 쓰게 되었고(창 3:16 참조)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 다 이런저런 의미의 “역기능 가정”이 되어 버렸다. 그런 상황에서도 가정의 성원들이 서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모든 가정들이 결국 많은 문제를 양산하는 가정들이 되고 말았다. 어떤 가정은 문제가 더 심각하여 하나님의 일부일처로 살도록 하신 뜻을 저 버리고 두 아내를 취하여 사는 일도 발생했고(창 4:19, 23), 혼인도 하나님의 뜻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들이 좋아 하는 대로 혼인하여(창 6:1,2) 모든 가정이 다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는 가정이 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죄에 대한 형벌로 죽는 상황 속에서 기적적으로 구원받은 노아의 가정 가운데서도 타락한 인간의 성정이 작용하는 일이 일어났고(창 9:20-24), 하나님께서 택하신 가장도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을 기다리다가 그것을 인간적인 방도로 성취해 보려는 어리석은 일을 하고 그로 말미암아 가정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창 16장). 또한 자녀들을 자신들의 취향에 따라 편애하는 문제도 드러내었고(창 26:27, 28, 27:4-10), 야곱의 가정은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해도 일부다처(一夫多妻)의 복잡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런 예들이 잘 드러내어 보여주듯이 우리들의 가정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의도에 부합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는 가정들이 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은 개개인만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고 동시에 우리들의 가정도 구속하려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개개인이 구속되듯이 우리들의 가정도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속된 가정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다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수행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셨고, 우리 가정도 그 본래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가정이 되도록 우리를 구속하신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처음에 우리들을 가정으로 살도록 창조하신 의미를 깊이 있게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있기를 원하시는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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