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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같은 시험에 직면해서도 신실하게 주를 섬기는 교회
    학회 등에 대한 소식 정보 2010. 1. 9. 20:27

    한국 성경신학회 학술지 <교회와 문화> 제 24호에 붙인 권두언을 미리 소개합니다. 읽어 보시고 2월 8일에 열리는 한국성경신학회 모임에 다 같이 참여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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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같은 시험에 직면해서도 신실하게 주를 섬기는 교회


    이번 호에는 베드로전서 주해와 설교라는 제목으로 우리들이 생각하고 숙고해야 할 것을 나누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에는 매우 풍성한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 그가 이루시는 구원의 과정, 성경 계시의 과정과 그 중요성, 구원함을 받은 성도들이 이 땅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가정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회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회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도 매우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만 잘 공부해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와 살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고, 성도의 삶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복음과 영광을 위한 고난의 삶임을 알게 되며,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온존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셔서(벧전 5:10) 극치에 이른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하실 것임을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바른 교훈을 받았음을 생각할 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들은 매우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번 호에 실린 여러 교수님들의 글을 읽으면서 베드로 전서를 통해서 주께서 우리에게 전달하시고자 하는 바가 잘 전달되고,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해야 하는 생각을 바르게 해 나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중에서 우리가 주목할만한 점을 몇 가지만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에게 이미 계시로 주어진 것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절실히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구약에서 준비된 것이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전하는 것이며 그 내용은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벧전 1:12). 그러므로 이 복음은 계시된 것이요, 세세토록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벧전 1:25). 베도로전서에서도 그렇고, 다른 신약에서도 이렇게 주어진 말씀 외에 다른 것이 더해진다고 시사해 준바가 없습니다. 오늘날 이 문제에 있어서 철저한 입장이 점점 더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케 하심을 얻기 위해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미 주어진 계시의 말씀에만 충실할 것이 요구됩니다.

     

         둘째로,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을 주께서 지키시며 목자와 감독으로 돌보시고 돌아보시며 온전케 하시고 굳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견고케 하실 것이지만 이런 사람들도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그래서 베도로전서에서는 “너희를 시험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하면서(벧전 4:12),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의 참여하는 것”으로 생각하며(13절) 따라서 그 고난 중에서도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하라”고 합니다(4: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는 것”(2:19)과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고 말합니다(2:20). 그러므로 참 성도는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근심할 수 있으나 그 가운데서도 “오히려 크게 기뻐하게” 됩니다(1:6). 또한 성도들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열심히 선을 행하는” 사람들입니다(3:11, 13). 이와 같이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사람은 신약 성경적 의미에서 복 있는 사람이라고 언급됩니다(3:14). 이런 고난의 복음에 대한 이해야 말로 한국 교회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고난은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이 땅을 사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교회 공동체를 위해 이와 같이 헌신하고 스스로 고난에로 나아가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있습니까? 우리가 심각하게 물어야 하는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진정한 성도는 항상 그런 방향으로 나아 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가르침에만 주의하면서 늘 겸손하여 성경의 뜻을 주석하는 일에서나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일에서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에서 어긋나는 것이 아니면 해석학적 다양성을 허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와 관련해서는 특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3:19)는 말씀과 관련하여 이런 겸손한 태도가 요구됩니다. 전통적 개혁파적 해석으로는 그리스도께서는 노아 시대를 포함한 구약 시대에도 성령으로 역사하셔서 각 시대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셨고, 영으로 그들 시대에 적합한 형식으로 선포된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이들의 영혼은 지금 옥에 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이런 개혁파적 해석이 가장 적절한 해석으로 받아들여 질만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존중하는 분들이 성경을 존중하는 태도로 해석하면서 이에 대해서 다른 입장을 취하여 루터파의 전형적인 해석, 또한  오늘 날에 많이 유행하는 해석대로 그리스도께서 옥에 있는 존재들에게 당신님의 승리를 선언하신 것이라고 주해할 때에 우리는 그것을 이단적인 해석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문제에 있어서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가질 수 있는 해석학적 다양성이 허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공동체를 더 풍성하게  하는 데도 기여 할 수 있습니다.

     

        부디 주께서 우리들을 사용하셔서 이와 같은 점들이 잘 나타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이 땅 가운데 드러내시기를 원합니다. 이번 호에 실린 여러 교수님들의 글과의 대화를 통해 이와 같은 일에 진전이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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