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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제도에 대하여

wminb 2005. 9. 7. 18:14
 

사형 제도에 대한 한국 교회의 입장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에서는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 법안”에 대한 국회 본회의에서의 심의 과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 사형 제도에 대한 한국 교회의 입장을 수렴하기 위한 세미나를 열기로 하였습니다. 이에 2005년 8월 19일에 열려진 한기총 신학연구위원회 세미나에서 토론을 거쳐서 모아진 한국 교회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천명합니다. 국회의원들께서는 한국 교회가 다음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유념하셔서 이번 법안 심사에 임해 주시고, 온 국민들께서도 이 견해에 대해 숙고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1. 우리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하고 고귀한 존재이기에 만일에 어떤 사람이 고의로 다른 사람을 죽인 경우에는 사형이 시행되도록 하나님께서 의도하시고 명령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창 9:6, 롬 13:4 참조).


2. 그러나 아주 심각하고 고의적인 살인과 그에 대한 교사, 그리고 그에 준하는 범죄 행위에 대해서만 사형이 언도되고 시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참으로 흉악한 범죄가 아닌 죄들에 대해서는 사형이 구형되어서도 안 됩니다. 또한 모든 재판 과정, 특히 결과적으로 사형을 선고하는 재판은 아주 엄밀한 절차상 적법성에 따라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사형이 오용되거나 오심이 있지 않도록 하는데 사법부와 온 국가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강하게 요구합니다.


3. 아주 엄밀히 규정된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사람에 대해서는 그 죄에 합당한 형벌인 사형을 시행해야, (1) 그가 범한 죄에 상응하는 벌의 일부나마 받는 것이 되며, 동시에 (2) 재소 기간과 사형을 통해 교화될 수 있는 기회를 부여 받으며, 또한 (3) 다른 이들로 하여금 그와 같은 죄를 범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여 인간 생명을 존중하는 원칙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4. 또한 사형을 ‘가석방이나 사면이 안 되는 종신형’으로 대치하는 것은 (1) 범한 죄에 합당한 형벌이 안 될 뿐만이 아니라, (2) 희망을 박탈하여 소기의 교정과 교화의 목적을 이루는 데 도움이 안 될 수도 있고, (3) 때로는 더 잔인한 형벌로 받아들여 질 수도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1) 원칙적으로 사형 제도가 존치되어야 하고, 동시에 (2) 재판 과정을 엄밀히 하여 그와 같이 흉악한 범죄 사실에 대해 의심한만한 점이 없을 때만 사형을 하도록 하고, (3) 사형을 오용하지 않도록 온 국가가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와 같은 점들을 고려하셔서 국회의원들께서는 대한민국에 보다 나은 제도가 시행될 수 있도록,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여 우리 법에 사형 제도를 유지하되, 사형 제도가 오용되지 않도록, 그리고 오심의 가능성이 없도록 사형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를 다시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요청합니다.




        


이와 같은 권면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성경의 가르침 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서는 지금 추세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어떤 중요한 이들이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지, 그 논거가 어떤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연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가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형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자 하는 구절은 창세기 9:6입니다: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이에 대한 우리의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엄밀히 구성된  대칭 구조(the tight chiastic formulation)를 지닌1) 이 구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사람을 죽인 사람은 하나님의 간섭에 의해서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는 미래 결과에 대한 선언을 하는 것인가,2) 아니면 살인에 대해서 사회가 어떻게 형벌해야 하는 지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담고 있는 것인가? 문법적으로는 “사람이 피를 흘릴 것이니”라는 히브리어 동사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이 다 가능하다.3)

    그러나 이 문장의 문맥 상 다음과 같은 점들을 살펴 볼 때 우리는 이 구절은 한 사회가 살인에 대하여 어떻게 형벌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으로4)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다.5) 첫째로, 창 9:5에서 사람의 생명을 죽인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그의 생명을 찾으리니”라고 하셨는데, 여기 사용된 용어는 사람이 단순히 죽게 될 것이라고 하는 서술을 의미하기 보다는 명령을 함의한다고 보는 것이 더 옳다. 그러므로 9:5의 말씀 중 사람의 경우에 어떻게 되리라고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9:6 상반절의 말씀이다.6)  둘째로, 창세기 6:9에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음이라는 것을 부기 하신 이유를 생각할 때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해서는 그런 형벌을 내려야 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단순히 서술을 하는 것이라면 이런 이유를 붙일 이유가 없겠기 때문이다. 셋째로, 창세기 9:6을 만일에 살인자를 하나님께서 처형하실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그것은 9:5이 말하고 있는 바를 반복하는 것이 되므로 6절 상반절의 말씀이 주어질 이유가 없어진다. 넷째로, 창세기 9:6 상반 절에 나타나는 두 번째 “사람”은 공식적인 형벌 집행자(the executioner of the criminal)를 뜻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우며,7)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구절에서 사형에 대한 신적 명령을 발견하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사람이”(םꕇאָꔯ)라는 말의 (be) 라는 말은 수단적 용법(the agential or instrumental use)으로 사용되었다는 견해를 지지한다.8) 그것이 이 구절의 가장 자연스러운 의미이고, 이런 자연스러운 의미가 있는데 이를 부자연스러운 다른 의미로 해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9) 마지막 다섯 번째로, 같은 모세 오경의 민수기 35:16-21에서 고의를 가지고 살인한 자들에게 대해 사형을 하도록 하는 규례가 있음을 볼 때10) 이 구절도 역시 같이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창세기 9:6을 살인의 범죄에 대해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형을 시행하도록 하신 명령을 주신 것이라고 보지 않는 것은 이 구절의 자연적 의미나 성경의 유비에 반하는” 것이라고 결론내린 죤 머레이(John Murray)의 결론은 지극히 타당하다고 여겨진다.11) 그리고 이 구절이 중요한 것은 이것이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구약적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규례가 아니라 보편적으로 인류 전체에게 주어진 명령이라는 점에 있다.12) 그리고 이 말 속에는 원한을 가진 사인(私人)이 분노에 가득 차서 보복하는 것을 금하는 의도도 함의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13) 그것을 포함하여 죄에 대한 형벌이 죄에 상응하게, 즉 정도를 넘지 않도록 하려는 함의도 있다는 해석도 주목하라.14)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살인에 대해서는 이와 같은 극형을 명령하신 것일까? 그 이유는 이 본문이 명백히 제시하고 있으니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창 9:6b).15) 따라서 인간을 손상시킨 이는 하나님의 형상을 손상시킨 것으로 보시는 것이다.16) 칼빈이 잘 표현한 바와 같이 “사람들은 그들에게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손상될 때 당신님 자신이 손상 받는 것으로 여기신다.”17) 그리고 이는 결국 하나님을 침해해 들어가는 것이 되기에 하나님께서는 극형을 선언하셔서 사람들이 사람들을 살해하는 것을 막으시기 위한 금령을 주신 것이다.18) 그리하여 이 구절은 사형 제도의 고전적 근거 구절(the scriptural locus classicus for capital punishment)인 것이다.19) “하나님께서는 노아 시대에 사형을 제정하셨다(창 9:6).”20) 국가가 세워지기도 전에 주어진21) 이 선언에 의하면, 스티거즈가 잘 표현한 바와 같이, “살인자는 하나님의 통치를 모독한 것으로 보이고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의지에 의한 보호 밖에 놓여진 것이다.”22) 그러므로 그에 대해서는 사형을 시행할 수 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살인자에게는 사형을 명하신 것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