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성경적인 하나님 나라 개념에 충실한 신학 작업을 지향하면서
    신학이야기 2020. 12. 25. 14:24

    <한국개혁신학> 66 (2020): 12-21에 66권의 권두언으로 쓴 글을 여기 제시하여 더 많은 사람이 읽도록 하오니, 부디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고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를 바르게 생각하고, 그에 근거해서 신학을 하고, 설교를 하고, 목회하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을 실천했으면 합니다.

    ---------------------------------------------------------------------------------------------------------

    우리들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은 다 교회를 잘 섬기고 교회에 유익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진정한 교회를 위한 신학(theologia pro ecclesia)은 결국 성경이 말하는 모든 사상에 충실한 신학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사상의 핵심에는 역시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교회를 위한 신학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 개념에 충실한 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과연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 지를 잘 공부하여, 그 하나님 나라를 이 땅의 교회가 잘 드러내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를 위해서 몇 가지를 언급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시는 하나님 중심의 나라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찬연히 빛나는 나라라는 것을 강조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성경적 이해와 성경적이지 않은 하나님 나라 이해의 차이는 기본적으로 여기서 드러납니다. 인간의 힘으로, 인간들이 노력해서 세울 수 있는 나라로 제시하는 하나님 나라 사상은 성경적 하나님 나라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그 이전에도 그러하였고, 초림에서도 그러하였으며, 그 나라를 극치에 이르게 하기 위해 이루어질 재림에서도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혼자의 힘으로만 형성되는 나라입니다. 인간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힘써 그 나라 백성 역할을 하지만 그것으로는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 수 없고, 종국적으로 하나님 혼자의 힘으로만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를 말할 때 진정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를 말하는 것이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속하게 되는 일인 구원이 오직 하나님 혼자의 힘으로만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 개혁파 신학의 주장이 성경적이듯이, 포괄적인 하나님 나라도 오직 하나님 혼자의 힘으로만 이루어집니다. 인간들이 열심히 그 나라 백성 역할을 하도록 강조하지만 그것으로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없고, 우리의 열심도 결국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구원론에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설립과 진행과 극치에 이르게 하심에서도 하나님 홀로 역사하심(monergism, 神獨力主義)을 우리들은 강조해야 합니다. 구원에서나 더 넓은 개념인 하나님 나라에서나 신인협력주의(synergism)을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또한 그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돌려져지는 나라입니다(Soli Deo Gloria). 하나님도 영광스러워지고 덩달아서 우리도 유익을 얻으려고 하는 번영의 신학은 성경적 하나님 나라 신학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우리가 십자가라도 지고, 모든 고난을 감수하겠다는 고난의 복음이 하나님 나라 신학과 부합합니다. 이 두 가지 점 모두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참으로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 중심의(theo-centric) 나라이지,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나라가 아닙니다. 역사와 우리 현실을 돌아보면 과연 어떤 하나님 나라 사상이 과연 성경적인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 나라를 성경적으로 이해하면 하나님 통치의 역사 안에서의 실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구속사적 실현 개념을 가져야 하나님 나라를 성경적으로 바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1:15: 4:17)고 선언하실 때도 바로 이런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 통치의 실현을 염두에 두면서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를 다른 곳에서 찾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저 하나님의 통치가 하나님 나라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통치가 이 역사 속에 실현되는 것을 하나님 나라라고 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따라서 참으로 경건한 유대인들은 장차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실현되기를 기다라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 기대와 연관하여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고 선언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오기를 기대하던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이런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을 더 분명히 확언해 줄 뿐만 아니라, 그 나라가 아주 가까이 왔다는 의미로 잘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 나라가 아주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12:28)고 선언하셨을 뿐 아니라, 그와 같이 하나님 나라가 그의 사역 가운데서 이미 임하여 온 측면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전혀 변화가 없는 것 같은데도 예수님께서 성령님의 사역을 행하시는 그 사역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와 있다는 이 말씀은 그야말로 혁명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참으로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고, 끝까지 이 말씀을 믿지 않으면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눈에 보기에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지 않기에 이 말씀을 믿기 어렵지만 성령님의 은혜로 이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희망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또한 그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때가 장차 있다(9:1)는 가르침도 받아들입니다. 그 때는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때라고 합니다(13:26). 그리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전체적으로 잘 배우면,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한 측면이 있고, 그러나 올 것이 다 와서 더 이상 올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장차 그 나라가 권능으로 올 때도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렇게 신약 계시에 의해서, 하나님 나라의 임함이 이렇게 두 차례에 걸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초림 때에 이미 이 땅에 임하여 왔으나, 지금은 눈에 보이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17:20)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을 가르쳐서, 하나님 나라가 영적으로 임하여 왔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이 땅에 이미 임하여 온 하나님 나라의 영적 실체(s spiritual reality)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다음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창조하셨으나 타락한 이 세상 안으로 뚫고 들어온 하나님 나라

     

     

    < 이 세상 [ 하나님 나라 ] 이 세상 >

     

     

    이것이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현상태의 정확한 모습입니다. 따라서 타락한 이 세상에는 그 안으로 뚫고 들어 온, 보이지 아니는 하나님 나라에 의해서만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장차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그 하나님 나라가 극치(極致, consummation)에 도달하게 됩니다. 지금 이 땅에 영적으로” “이미 와 있는그 하나님 나라가 재림 때에 그 나라의 극치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옛 사람들은 영광의 왕국”(regnum gloriae)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영광의 왕국은 지금 현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 땅에 임하여 온 은혜의 왕국”(regnum gratiae)과 그 은혜의 왕국이 있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고 주권을 행사하시며 그 모든 것을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주셔서 통제하도록 하신 온 세상에 미치는 보편적인 권능의 왕국”(regnum potentiae)이 모든 통일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국에는 이 극치에 이른 하나님 나라”, 영광의 왕국만이 있게 됩니다. 이것을 이사야서 65, 66장과 요한계시록 21, 22장과 베드로후서 3;13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다음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극치에 이른 하나님 나라”=“영광의 왕국”=“새 하늘과 새 땅

     

     

    예수님의 재림 후에 있을 영원 상태를 이렇게 지칭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극치에 이름이 속히 오기를 바라면서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지금도 기도합니다. 그 나라가 극치에 이를 때까지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하늘”(heaven)에 있는 순교자들의 영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6:11)고 말씀하십니다. 그 나라가 극치에 이를 때까지 하늘에서도 기다리며 쉬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가르침에 충실하게 사도 바울도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쳤습니다(28:23, 31). 예수님과 바울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이 다를 수 없습니다. 바울도 하나님 나라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방식으로 이 세상에 와 있음을 명확히 하면서,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1:13)라고 선언합니다. 그 사랑의 아들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나라이고, 곧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미 이 땅 가운데서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어 하나님 나라에로 옮겨지는 일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가 이미 이 곳에 와 있어야 일어 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나라가 영적으로 이 땅 가운데 현존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절을 병행법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하면,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얻는다는 것(1:14)이 곧 하나님 나라 안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요한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3:5)고 말씀하신 우리 주님의 말씀을 전해 줍니다. 그러므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에 따라서 예수님을 참으로 믿은 우리들은 (1) 이미 거듭나고 죄사함을 얻어서 하나님 나라 안에 들어 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2) 그리고 그 나라 백성답게 하나님 나라 백성 역할을 해야 합니다. , 날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가야 합니다. (3) 그러면서 그 나라가 극치에 이르기를 사모하며, 그 일을 위해 기도하면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셋째로, 이렇게 예수님을 믿어서 이미 하나님 나라에 있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도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고, 죽어도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2:23).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별 차이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이 땅에서 사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죽어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인지의 차이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죽음의 쏘는 것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울과 함께 죽음조차도 조롱할 수 있습니다(고전 15:55). 오히려 죽음에서 우리의 영혼이 온전히 성화되니, 우리들은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1:21).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죽으면 그 영혼이 이 세상을 떠나 우리 주님과 함께 있게 됩니다(1:23). 우리 주님은 하늘의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고 하였으니, 우리는 그 때 하나님과 함께 있게 됩니다.

     

    참 성도들이 죽은 후에 있게 되는 곳이 어디인지는 성경 전체가 아주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그곳에 있다고 합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하늘”(heaven)에 계심을 명확히 합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한 후에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서 주는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옵소서”(왕상 8:45//대하 6:35)라고 합니다. 히스기야 때에 오랫만에 유월절 절기를 지킨 후에 그 때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서 백성을 위하여 축복하였으니, 그 소리가 하늘에 들리고 그 기도가 여호와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 이르렀더라”(대하 30:27. 참조 애 3:50; 33:13)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하나님)(2:4; 3:41; 2:18; 115:3), “하늘에 계시는 주”(123:1), “하늘의 하나님”(136:26; 7:23) 등으로 언급합니다. 신약에서도 하나님을 언급할 때 하늘에 계신하나님(5:48; 6:9; 18:10), 하늘 아버지”(6:14, 32; 15:13; 18:35; 11:13)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heaven)에 계시다는 것을 명백히 하는 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어디에 계십니까? 예수님의 승천 장면에 흰옷을 입고 두 청년의 모습으로 나타난 천사들은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1:11)고 선언했습니다. 이런 가르침에 주의한 사도들은 후에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3:21)고 같이 선언했습니다. 다른 곳에서도 그가 하늘에 올라가셨다고 합니다(3:13; 4:10). 이렇게 성경은 곳곳에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 지금 하늘에 계심을 성경은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 계신 그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그리스도와 함께 있습니다. 위에서 그 곳을 하늘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의 관념을 따라 셋째 하늘이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고후 12:2). 그곳을 낙원”(paradise)이라고도 했습니다(고후 12:4). 우리 주님께서도 신앙을 고백하는 한편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23:4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중생하여 예수님을 믿어 이미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 사람들은 죽어서 그 영혼이 하나님께서 계신 그 하늘”(heaven)에 있게 됩니다. 이곳을 중국 분들과 옛 우리 조상들이 천당(天堂)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그저 하늘”(heaven)의 번역어를 이렇게 쓴 것입니다. 이제까지를 정리하면 다음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그 하늘”(heaven)=낙원(paradise)=천당(天堂)

     

     

    그러나 이것이 마지막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위에서 언급했습니다. 성도들은 하늘에서 안식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 나라가 극치에 이르기를 기도하면서 기다립니다. 그렇게 하다가 예수님께서 재림하여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극치에 이르면, 즉 영광의 왕국이 임할 때에 그 극치에 이런 천국에 우리들을 넉넉히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7:21; 14:22; 딤후 4:18). 그러나 믿는다고 말만 하고 하나님을 실질적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고전 6:9, 10).

     

    그러므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여 왔음을 참으로 믿는 사람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나감으로 하나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 있음을 증언하고, 죽은 후에 하나님계서 계신 그 하늘”(heaven)에 그 영혼이 있다가 예수님의 재림으로 임하게 될 하나님 나라의 극치새 하늘과 새 땅에 참여하여 그 영광의 왕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주 간단하게 정리한 성경적인 하나님 나라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상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사용하는 용어도 이런 성경적 용어 사용에 일치하게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강의하는 코넬리우스 반틸의 모습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을 잘 설명한 보스

Designed by Tistory.